바그다드 카페.

 

 

  라스트 홀리데이의 조지아도 보고 싶었지만 이 영화는 곤냥의 크리스마스 우울방지용 영화리스트에 있으니 패스하고, 새해에도 긍정적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바그다드 카페의 아름다운 마술사 쟈스민을 만나야겠다.

 

 

  쟈스민이나 조지아처럼 살고 싶은데 어쩐지 몸매만 그녀들을 닮아가고 정신상태는 흠이 많은 것 같아 반성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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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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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는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던 영화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감독으로도 잘 알려진 가스 제닝스 감독의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과 함께하는 영화이기도 하고.

 

  아주 오랫동안 좋아했었던 남자에게 우발적으로 고백한 뒤 하게 되었던 데이트 때, 필름 포럼에서 마침 상영중이었던 이 영화를 봤다. 그는 이 시간엔 아마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고 지나가듯 말했었는데 극장에는 우리 빼고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있거나 말거나 어차피 보이지도 않았을 테지만). 지하에 있는 작은 상영관에는 우리 둘 뿐이었고,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고, 영화가 상영되기 직전 극장은 암전이 되었고, 우리는 키스했다. 세상이 갑자기 나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려 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면 되는 것이라고 믿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와 나는 잘 되지 못 했다. 그에게는 의리를 지켜야하는 애인이 있었고, 나는 난데없이 선택의 순간에 이성을 되찾았다. 얼마 지속되지도 못 할 이성이 왜 하필 그 순간에 출현한 건지 아직도 의문이다. 아마 그가 나를 여자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우리는 친한 선후배였다) 이 우스꽝스런 시나리오의 결말이  눈에 훤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착한 사람 코스프레라도 하고 싶었는지도.

 

  고백 이후 딱 일주일 거의 매일 만나며 때때로 우리는 선을 넘었지만 거기에 일말의 사랑이라도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내가 가졌던 오랫동안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해주는 판타지를 가졌고, 믿었고, 일주일의 혼란 속에 그 판타지 멜로에 탑승했다가, 끝내는 그것으로부터 조롱당했다.

 

  버스안에서부터 필름포럼까지 내내 붙잡았던 손에 땀이 흥건했었다. 놓고 싶지 않았던 그의 손을 떠올리면 지금도 좋다. 그가 나를 버리기 애매한 후배로 생각했더라도 좋았고, 오랜 연애의 틈을 잠깐 메우는 여자로 생각했어도 괜찮다. 나는 아직도 선배라는 단어를 내뱉으면서 스스로 흠칫 놀라곤 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일어날 일은 그의 말처럼 일어나게 되어 있었고, 일어났고, 아팠고, 지금은 연락조차 주고받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선배는 내 연애의 트라우마가 되었지만 더이상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은 아니다. 내가 왜 그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그것이 삶의 원동력이 된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나는 더 많이 그를 좋아했고, 그의 세계를 사랑했다. 그것이 진짜였든, 속임수였든 중요하지 않다. 그로 인해 내 세계는 살짝 뒤틀려졌고 방향은 전환이 되었으며 나는 또 다른 내가 되었다.

 

  나(실제의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은 아주 졸작으로 관객 두 명의 초라한 기록을 남기고 잊혀져갔다. 그러나 데뷔작을 시작으로 나의 세상은 다르게 굴러갔고, 그 세상을 잘 다듬어가며 나는 계속 살아가고 있다. 매순간 행복하려고 노력하면서.

 

 

 

 

  언젠가 한번은 다시 만나고 싶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가 알던 그가 아니라도 웃으며 인사할 수 있을 때, 하지만 내가 아직 닳고 닳은 한심한 인간이 되기는 전에 반드시 그를 보고 웃으며 인사하고 싶다.

  내가 아직도 기억해. 현실에 발목잡히지 말자던 너의 말을 기억하고 있고, 그렇게 하며 살아가느라 내 인생은 이 지경이 되었지만. 나쁘지 않은 시간이라 참 고마워.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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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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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리를 하는데 나왔다.

부산에 온지 반 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이라, 어쩐지 다시 꺼내 읽게 되었음.

파일은 버리고 티스토리에 짱박아 놔야 겠다. 어쨌든 나중에 읽으면서 낄낄댈 수 있을 것 같으니까.

 

 

 

2월 호주 워킹홀리데이와 필리핀 어학연수를 마치고 햇수로 3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 대한민국 상공에서 서른이 됐다. 그 뒤로 5개월, 현실에 적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내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공백기를 갖고 재취업하려는 서른 살 아가씨를 이해해주는 회사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부산에 있는 기획회사에서 기획자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서울 살이에 지쳐 종종 농담 삼아 부산 가서 살아볼까 했던 것이 생각나 반은 객기로 지원했는데 고맙게도 면접제의가 왔고 그게 인연이 되어 나는 진짜로 부산에게 살게 됐다. 부모님은 말이 씨가 된다더니 저 계집애가 어쩌려고 또 타지를 가느냐며 혀를 차셨지만.

무작정 내려와 집을 구할 여력이 안 돼 고시텔에 이틀 일찍 여행가방 하나를 질질 끌고 부산에 입성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 차분하게 쉴 수가 없었다. 타국에 나가있으면서 부산출신 친구들을 많이 만났는데 한결같이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었던 것이 기억났고 그 친구들의 구수한 부산말도 자꾸 떠올랐다. 대구의 언니야와 부산의 언니야가 다르다던 언니야도.

여행 삼아 자주 왔던 도시지만, 막상 살게 되고 보니 휴양지로 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면면이 보였다. 특히 부산은 바다, 라고 생각하던 내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마을들과 거리들의 모습이었다. 나중에 들어 산복도로라는 말을 알게 됐는데 당시엔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산복도로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곳이 다만 살고 있는 거주지일 텐데 이제 막 도시를 접한 내게는 정말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미지의 공간으로 보였다.

부산에 올 때마다 이곳 사람들은 내게 늘 바다나 먹거리만 보여주곤 했다. 그게 다라고 여겼던 멍청한 생각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어느 곳에나 숨은 매력 얼마쯤은 있는 법이고 자기 앞마당일수록 뭐가 있는지 잘 모른단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안다고 생각했던 도시에 대한 이미지를 다 버리기로 했다. 그런 다음 다시 한 번 저 멀리 산복도로를 바라보니 그렇게 이 도시가 신선하게 다가올 수가 없었다.

다음 날 부산 토박이인 지인에게 산복도로를 잘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한두 곳이 아니라 본인도 다 가본 적은 없고 시립중앙도서관을 한 번 가보라고 했다. 가는 길에 내가 원하는 곳을 다 볼 수 있을 거라고. 산꼭대기에 무슨 도서관이 있느냐고 타박을 줬더니 그가 손끝으로 저 멀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뾰족한 것 근처가 도서관이예요.”

그 순간 삭막한 고시텔은 도서관이 가까운 우리 동네가 되었고 나는 버스를 타라는 지인의 충고를 무시하고 스마트폰 지도만 검색해서 무작정 도서관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지도를 보니 버스를 타든 도보로 이동하든 20분정도 걸리는데 굳이 버스를 이용할 필요가 없어 보여서. 걸으면서 왜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지 체감했다. 대중교통과 도보 이용시간이 비슷했을 때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하다니 나중에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터져 나왔다. 산을 오르는 셈인데 직선거리만 표시된 지도 어플만 믿었던 것이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계단을 올라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덕분에 처음 몇 번은 몰라서, 나중에는 오기가 생겨서 그냥 걸었다. 스마트폰도 가방에 집어넣고 친구가 말했던 저기 뾰족한 것(알고 보니 충혼탑이었다)만 보고 걷다보니 민주공원와 중앙공원이 나왔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도서관 위치를 확인할 수 있어 자연스럽게 산책하듯 주변 길들을 둘러보며 부산시립중앙도서관에 도착했다.

오고가는데 불편함은 있겠으나 그런 수고를 감수할 수 있을 만큼 아주 근사한 곳에 위치한 도서관이었다. 시설 면에서는 솔직히 다른 공공도서관과 별다를 부분이 없었지만 산꼭대기 독특하고 아름다운 장소가 주는 매력만으로도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한다. 뭔가에 집중하다가 문득 내려다본 창밖 풍경이 이렇다면 정말 공부할 맛이 나겠구나 싶을 정도로.

마을버스를 타고 온 길을 되돌아갈까 하다가 크게 마음먹고 올라온 길과 다른 방향으로 능선처럼 이어진 산복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 보기로 했다. 올 때는 쉴 틈 없이 지도와 목적지로 가늠되는 곳을 확인하느라 못 보고 지나친 것들도 제대로 보고 싶었다.

땀으로 샤워한 듯 찝찝했던 기분을 싹 가시게 만드는 산 아래 펼쳐진 전경을 내려다보며 와, 어떻게 저기서 여기까지 걸어왔을까 스스로에게 감탄했다. 예전에는 지금 지명에 쓰이는 부() 대신 부()가 쓰였다는 걸 어딘가에서 본 기억났다. 과연 산이 많기는 많았다. 주위를 둘러봐도 산이 그토록 많은데 부산에 올 때마다 그저 바다만 따라다녔던 이유가 떠오르질 않을 정도로.

산 아래 시원하게 펼쳐진 도심 전경과 멀리 바다까지 내려다보며 내가 만났던 부산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비로소 아주 조금은 그들의 패기와 모험심을 이해할 수 있을 듯도 했다. 이토록 높은 곳에서 하늘과 바다와 바람으로 자란 그들에게 삶을 바라보는 방법은 달라도 크게 달랐을 것이라고. 어쩐지, 어디를 다녀도 유난히 부산 사람이 많더라니, 그래, 이런 풍경을 보면서 나이 들면 큰 꿈을 꾸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겠다 싶었다.

한편으로는 아랫동네로 내려가 살지 못 하고 살기 불편한 산동네에서 오밀조밀 모여 살아야 하는 모습이 도심과 바다의 화려함에 묻히는 듯 해, 산복도로의 풍경을 그저 아름답고 신비롭게만 바라보던 마음을 환기해주기도 했다. 사는 이들에게는 삶을 살아내는 터전으로 존재해왔던 곳이 방문자인 내게는 여럿의 모순적인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묘한 곳이었다.

올라올 때보다 내려가는 길이 수월할 줄 알았는데 체력적으로는 그럴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결코 쉽지 않았다. 이것저것 생각할 거리가 많아 오히려 심정적으로는 벅차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조금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발품을 팔아 한 것은 별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살게 될 동네를, 또 그 주면을 둘러보았을 뿐이니까. 그러나 나는 벌써 몰랐던 부산의 일부분을 하나 발견해냈다. 새로 알고 만나 사귄 사람의 면면을 찬찬히 살펴보듯, 오롯이 나만의 시선으로 부산을 바라보는 법을 산들과 도심의 풍경과 산복도로를 통해 배웠다.

그리스 산토리니나 이탈리아 피렌체란 문구처럼 과장되거나 혹은 그럴싸한 묘사들로 실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그간의 광고 자료들을 생각해보았다. 내가 몸으로 만난 부산은 애초의 기대와 다소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새롭게 알게 돼 기쁘고 반가운 면도 많았다.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마음에 담았을 때 그 대상들로부터 오는 마음에 착 감기는 감동은 의외의 것이라 더욱 신선했다.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또 무언가 새로운 장·단점을 발견할 때마다 그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지는 법이기도 하고. 이 모든 것들이 마치 전혀 몰랐던 사람을 어느 날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기 시작하니, 그때서야 비로소 그 사람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던 연애의 과정과 닮아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 연인과 헤어지듯 부산을 떠나 살게 될 날이 오더라도 지금부터 알아갈 부산의 모습이 문득 문득 내 삶을 파고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혈혈단신 이 도시에 자리 잡았으나 발 디딘 이곳이 나의 또 하나의 고향이 되고, 오래 만난 애인이 되어 곁을 지켜줄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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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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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관계 없는 이야기를 시작해서 좀 미안하다. 그런데, 내가 미안하다고 해서 누가 볼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좀 지껄여볼게."

 

 

 

 

1.부산에 내려온 지 6개월에 차에 접어들었다. 12월이 지나면 반년을 부산에서 산 셈이다. 그런데, 나는 돈을 모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안 모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모으는 것 같기도 하다. 당장 뭔가 하고 싶은데 여유가 없는 것이 괴롭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풍족하면 반드시 다 집어치우고 다른 일을 하고 싶어질 것이 뻔하니까? 글쎄. 잘 모르겠지만.

 

2.살아보려고 발악하는 동안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 내년이면 내가 갑자기 서른, 서른 하나, 서른 둘이 된다. 서른은 인터내셔널 에이지로 쳐서 그렇고 서른 하나는 대한 민국이 인정하는 법적 나이이고, 서른 둘은 울 엄마가 진짜로 나를 낳은 년도를 기준으로 따진 나이다. 나는 지금도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내 나이를 바꿔가며 살고 있다. 타국에서 만난 친구들에게는 내가 곧 서른이 되고(사실 내 나이 따윈 신경도 안 쓰겠지), 학교와 직장에서 만난 지인들에게는 서른 하나, 가족과 아주 특수한 지인 몇에게는 서른 둘이 된다. 대개는 그냥 곧 서른 하나가 되는 여자로 살지만. 아무튼 최근 나이 때문에 내가 또 개족보를 만들 뻔해서... 예의만 지키면 되지 나이까지 순서를 매겨야 하나. 어차피 우리가 죽는 데는 순서 없잖아?

 

3.나는 왜 이렇게 낡아빠졌을까, 여기 저기 녹이 슬어 제 역할을 하지 못 하는 부위들이 속출하면서(정신상태도 포함해서) 일의 능률은 떨어지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일 자체에 대한 열정이 없다. 내가 가증스럽다. 매번 타협안을 선택해놓고, 1순위를 하지 못했다고 울고 있는 꼴이라니. 언제나 결정한 것은 나였다. 휘둘린 것도 나였다. 남들이 강요한다고 뭐든 다 그대로 해서는 안 되는 걸 몰라서가 아니라, 모두가 아니라는 길에 서려 있을 위험을 떠안고 싶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의 나는 내가 좀 한심하다.

 

4.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 여덟 글자로 만들어진 한 문장으로 현재 내 모습을 명확히 보여줄 수 있다. 나는 나만 내가 뿌려놓은 말을 수습하려고 살고 있다. 책임감, 그것이 없었다면 난 벌써 노숙녀가 됐을 걸.

 

 

 

 

 

 

 

 

 

Anyway, 요즘 이렇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좀 끄적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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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아시아가 특가 행진을 하고 있다.
퍼스까지 날아가는 표가 정말 많이 저렴해서
갈 수 없을 지도 모르지만 예약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퍼스에 있는 미유님도 보고 싶고
내 기억들이 남겨진 거리를 다시 걷고 싶다. ...
펍에서 맥주를 한 잔 마시며 호주 남자들은 참 빙신들이라고
아시아 여자는 다 쉬운줄 아나, 하면서
잘난척도 좀 해보고 싶고.
그러나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휴가도 없고.

여행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갈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고
여유와 여건이 되는 사람은 어쩐지 여행을 가지 않는다.
삶에 있어서 여행이 절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살다가 그저 자연스럽게 여행이라는 걸 하게 되는 사람들
어느 부류가 되든 나에게는 환기가 필요하다.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날들이 너무나 그립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한국이 거지 같은 나라라고 생각할까봐
나는 그 동안 참 많은 이야기를 아껴왔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내게는
기억함직한 순간들이 별로 없었다.

기억할 만큼 행복하고 여유로운 시간,
언제고 기억나게 될 끔찍하게 괴로운 순간들,
(그래, 심지어 쓰레기처럼 생활하던 것도 그리울 지경)
기억해낼 때마다 삶의 바닥을 박차고 다시 떠오르게 만들 원동력,
그런 순간들이 필요하다.

이 사회에는 나를 아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그것이 나를 아늑하고 따뜻하게 하다가도
때때로 온몸을 죄고 살을 파고드는 올가미 같기도 하다.
그러니 살이 에이듯 마음에도 상처가 생기기 시작할 때
그 때를 여행의 순간으로 삼는다면
지친 상태로도, 조금은 더 걸어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냥, 여행이 하고 싶다는 말인데
슬프게도, 여행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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