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함 속에서 초대장을 하나 발견했다. 겉은 평범한 카드 봉투였는데 막상 열어보니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말 투성이었다. 본인을 이웃의 마법사라 소개한 익명의 발신자는 자신의 집(실제로는 놀이공원을 방불케 하는 성채 형태였지만)은 길 건너에 있으며 생각이 있다면 저녁에 열리는 파티에 와줬으면 한다고 적어 놓았다. 카드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고개를 들어 길건너를 보니 정말 마법사의 집이 있었는데 언제부터 그곳에 그 집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제까지는 없었는데 갑자기 생긴 것도 같았고, 늘 거기에 있었는데 내가 미처 관심을 두지 못한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파티에 참석하기로 했다. 어차피 할 일도 없는 아이들의 밤. 어른은 살지 않는 작은 동네에서 아이들이 참석하는 떠들석한 파티를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게다가 심심하던 차였다. 혼자 가기가 좀 꺼려져 동네 친구녀석을 꼬셔서 데려가는데 마법사의 집까지 걷는 내내 주위로 오토바이에 탄 아이들, 걷는 아이들을 많이 발견했다. 

 

  우리 일행을 빼고도 꽤 많은 아이들이 파티에 참석했는데 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 집에 익숙한 것처럼 온갖 놀이기구(심지어 놀이기구도 있었다 그 집에는!) 위를 종횡무진하며 놀기 시작했다. 마법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혹은 녀)는 파티를 위한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았지만 어느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는 듯했다.

 

  파티가 끝나서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아이들에게 누군가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익숙한 듯 주사를 맞은 아이들은 약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친구 녀석과 나는 그 광경이 너무나 놀라워 일단 조용히 집을 빠져나가는데 뒤이어 나온 아이들은 기괴하게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뭘 물어도, 전혀 대답할 수 없는 상태로 몽유병에 걸려 꿈 속을 헤매듯 모두 묵묵히 집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친구를 설득해 마법사의 집으로 발걸음을 다시 돌리기 시작했다. 친구는 말렸으나, '왜' 나를 초대했냐는 질문에 답을 듣지 못한다면 호기심이 매일밤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었다. 우리는 굳게 닫힌 문을 지나 아주 좁고 높이 나 있는 계단을 발견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고... 오르던 도중 친구는 갑자기 사라졌다.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고...

 

  누군가 빙긋 웃으며 주사기를 들고 나와 나에게 놓았다. 반항하지 못 했다. 마법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눈을 떠 보니 집이다. 우편함 속에서 초대장을 하나 발견한다. 그리고 이웃 마법사는 매일밤 아이들을 위해 파티를 연다.

 

 

 

 

 

이것은 꿈 내용

왜 나는 이런 꿈을 꾸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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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걸 눈이라고 해야 할지 눈바람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생애 처음 보는 부산의 눈은 어쨌든 신비롭다. 그리고, 눈은 추위까지 몰고와서 지금 몹시 춥다. 온풍기가 작동중인 사무실 안에서도 냉기가 느껴진다.  

 

 

  달리 할 말은 없다. 일을 해야 하는데 오전 시간을 눈에 정신팔려 이제 겨우 업무를 시작하려던 참이다. 간밤에 기이한 꿈을 꾸었는데 그것도 한 몫 했다. 꿈 이야기도 써야 하는데 일단 기획안부터 마무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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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와 새삼 깨달은 것마냥 굴 이유도 없지. 나는 뼛속까지 질투라는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이 취미인 것처럼  굴던 사람 아니었나. 그리고 나의 질투는 거의 언제나 내가 가졌어야 할 모든 것(사람을 포함해서)을 누군가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할 때 최초로 발생했다. 나는 내 것이어야 했던 것을 가지게 된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취미에도 없던 만화를 그리거나 코카콜라 전광판을 좋아하게 되거나 피아노를 초급부터 다시 독학하기도 했었다. 전부다 어영부영 하다가 관두었는데 그것은 어차피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했구나, 라는 깨달음(사실은 자포자기에 가까웠다) 때문이었다. 여기까지가 학창시절 이야기 쯤 되는 듯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게서 극단적으로 멀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아, 내가 좋아하는 일에 발 하나쯤 담궈봤으니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라는 문장으로 점철된 날들이었다.

 

  대학 때부터는 상황이 조금 나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나온 학과는 성적에 맞춰서 어쩌다보니 가게 된 것이었지만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질투 덕이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질투는 전처럼 무엇을 포기하게 만드는 결과를 만드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질투로 시작된 일들이 글을 쓰는 아이들 틈바구니에서의 숨막히는 공기를 참을 수 있게 해주었고, 나를 발악하게 하여 어떤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해주었고, 친구를 만들어주었고, 수많은 실패를 동반한 경험까지 주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다. 나는 질투가 가진 힘을 믿는다. 질투는 때때로 나를 나락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오늘 같은 날엔 무덤 같은 일상으로부터 악착같이 기어나올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한다.

 

  존재만으로도 나를 일으켜세우는 사람, 질투하게 만드는 사람, 뛰어넘어보라며 기꺼이 내 앞에서 달려주는 사람을 발견한 날의 기쁨. 오늘, 숨막히게 아름다운 사람을 발견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을, 그 이상을 갖고 싶다. 집요하게 스토킹(?)하여 쪽쪽 다 뽑아먹어야지.

 

  아... 난 왜 마지막이 매번 이리 진중하지 못하단 말인가!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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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어디에서 정착해 살고, 어떤 곳을 여행하게 되든지 간에

 

 

1. 그 곳 문화는 존중하되

2. 절대 나의 본질(내가 옳다고 믿는)을 버리지 않겠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편하게 사는 동네주민이 되어 동네 밖은 기웃거려볼 생각도 하지 않는 빙충이가 될 것 같아.

 

 

 

  그러니까 난 절대 부산 사람은 안 될 거다.

  여행자에게 부산은 낭만 넘치는 도시지만, 부산 사람이 되어 바라본 부산은 여느 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지내는 동안 오랜 장기체류자로 남아 계속 다음 여행을 위한 준비태세를 갖추겠다. 사투리도 지금부터는 절대 배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너무 좋아하거나 너무 가까워지지 않기로 한다.

 

  여기도 내 살 곳 작은 내 집은 아니 될 듯하다. 부산은 여행인걸로, 정착지에서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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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운 적이 없고, 뛰어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요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2년의 호주 생활에서 내게 남은 것은 몇몇 '사람'이었고, 나는 그 사람들을 '음식'을 먹여서 꼬셔(?)냈으므로 음식이란 나에게 모든 관계의 허브 역할을 해주었던 셈이었다. 궁극적으로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최상의 매개체가 바로 Food였기 때문에 나는 경력과 전공과는 상관없이 요리하는 여자가 되는 것이 꿈꾸었었다.

 

  내 꿈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묵살당했다. 내가 나이가 많아서였고, 다시 한국을 떠나려 해서 였고,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이 무모하다는 이유여서였고, 나는 그만큼의 재능은 없다고 해서였고, 무엇보다 나는 내 꿈을 지키기 위해서 부모와 싸우는 일에 이전부터 너무나 취약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아주 작은 회사에 다니면서 작가라는 직함을 달고, 실제로는 작가 업무 대신 잡다한 일들에 더 많이 치이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개인 화장실이 포함된 고시원의 좁은 방에서 기거하면서 버는 돈만큼 소비해야 생활이 가능한 상태이고, 아무래도 이런 고생을 한 일년 정도는 더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것이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럭저럭 일에 보람도 있고, 무엇보다 여기는 부산이며, 집에서 다시 멀어졌고, 나는 스스로를 장기체류자, 여행자로 규정하였다. 그래서 모든 일은 다 지나가는 한 때의 것이라고, 그러니 괜찮다고 나를 위안할 수가 있다.

 

  다만, 내게는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서 먹여줄 동네 친구가 없고, 그나마 나를 위한 요리가 가능한 공간도 없다. 이것이 문제이다. 부산에 내려온 이후 거의 모든 끼니를 바깥에서 사먹고 있어 식비도 엄청나게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주방에서 뭘 만드는 것이 끔찍하게 싫다. 내 것이 아니라고 설거지를 안 하고 가는 얌체들 때문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주방을 혼자 휘휘 돌아다닐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냥 음식을 만들면 슬퍼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사람들을 끌어모아 방에 앉혀두고 한 손엔 맥주 한 손엔 국자를 든 채 니들은 가만히 있어 음식은 내가 알아서 다 할게 재밌게 떠들어봐 나 좀 웃게 주방에 기웃거리지 말고 음악이나 좀 틀어줄래 정 하고 싶으면 양파나 까 감자를 까든지 따위의 말을 하며 양조절이 안 돼 엄청난 분량의 음식을 만들어놓고 맛있게 안 먹으면 다 죽여버리겠다고 협박도 하고 설거지는 니들이 해라 따위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뜬금없이 옛 사진을 올려본다. 쌀 모양의 파스타, 리조니를 마트에서 발견하고 흥분해서 구매해 마을을 떠나는 워홀러 친구를 위해 만들었던 오븐 파스타... 물론 다들 쌀이라고 생각해 오븐리조또라고 오해하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인기는 있었다. 오븐 음식과 치즈는 옳기 때문에...

 

 

 

  오늘은 회사 출근해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그래서 쓸데없는 포스팅을 해본다. 티스토리에는 이런 포스팅 안 하려고 했었는데... 그냥 지껄이고 싶다 오늘은! 내가 이렇다고! 하고 싶은 게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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