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 정리를 하는데 나왔다.

부산에 온지 반 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이라, 어쩐지 다시 꺼내 읽게 되었음.

파일은 버리고 티스토리에 짱박아 놔야 겠다. 어쨌든 나중에 읽으면서 낄낄댈 수 있을 것 같으니까.

 

 

 

2월 호주 워킹홀리데이와 필리핀 어학연수를 마치고 햇수로 3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 대한민국 상공에서 서른이 됐다. 그 뒤로 5개월, 현실에 적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내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공백기를 갖고 재취업하려는 서른 살 아가씨를 이해해주는 회사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부산에 있는 기획회사에서 기획자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서울 살이에 지쳐 종종 농담 삼아 부산 가서 살아볼까 했던 것이 생각나 반은 객기로 지원했는데 고맙게도 면접제의가 왔고 그게 인연이 되어 나는 진짜로 부산에게 살게 됐다. 부모님은 말이 씨가 된다더니 저 계집애가 어쩌려고 또 타지를 가느냐며 혀를 차셨지만.

무작정 내려와 집을 구할 여력이 안 돼 고시텔에 이틀 일찍 여행가방 하나를 질질 끌고 부산에 입성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 차분하게 쉴 수가 없었다. 타국에 나가있으면서 부산출신 친구들을 많이 만났는데 한결같이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었던 것이 기억났고 그 친구들의 구수한 부산말도 자꾸 떠올랐다. 대구의 언니야와 부산의 언니야가 다르다던 언니야도.

여행 삼아 자주 왔던 도시지만, 막상 살게 되고 보니 휴양지로 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면면이 보였다. 특히 부산은 바다, 라고 생각하던 내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마을들과 거리들의 모습이었다. 나중에 들어 산복도로라는 말을 알게 됐는데 당시엔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산복도로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곳이 다만 살고 있는 거주지일 텐데 이제 막 도시를 접한 내게는 정말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미지의 공간으로 보였다.

부산에 올 때마다 이곳 사람들은 내게 늘 바다나 먹거리만 보여주곤 했다. 그게 다라고 여겼던 멍청한 생각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어느 곳에나 숨은 매력 얼마쯤은 있는 법이고 자기 앞마당일수록 뭐가 있는지 잘 모른단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안다고 생각했던 도시에 대한 이미지를 다 버리기로 했다. 그런 다음 다시 한 번 저 멀리 산복도로를 바라보니 그렇게 이 도시가 신선하게 다가올 수가 없었다.

다음 날 부산 토박이인 지인에게 산복도로를 잘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한두 곳이 아니라 본인도 다 가본 적은 없고 시립중앙도서관을 한 번 가보라고 했다. 가는 길에 내가 원하는 곳을 다 볼 수 있을 거라고. 산꼭대기에 무슨 도서관이 있느냐고 타박을 줬더니 그가 손끝으로 저 멀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뾰족한 것 근처가 도서관이예요.”

그 순간 삭막한 고시텔은 도서관이 가까운 우리 동네가 되었고 나는 버스를 타라는 지인의 충고를 무시하고 스마트폰 지도만 검색해서 무작정 도서관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지도를 보니 버스를 타든 도보로 이동하든 20분정도 걸리는데 굳이 버스를 이용할 필요가 없어 보여서. 걸으면서 왜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지 체감했다. 대중교통과 도보 이용시간이 비슷했을 때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하다니 나중에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터져 나왔다. 산을 오르는 셈인데 직선거리만 표시된 지도 어플만 믿었던 것이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계단을 올라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덕분에 처음 몇 번은 몰라서, 나중에는 오기가 생겨서 그냥 걸었다. 스마트폰도 가방에 집어넣고 친구가 말했던 저기 뾰족한 것(알고 보니 충혼탑이었다)만 보고 걷다보니 민주공원와 중앙공원이 나왔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도서관 위치를 확인할 수 있어 자연스럽게 산책하듯 주변 길들을 둘러보며 부산시립중앙도서관에 도착했다.

오고가는데 불편함은 있겠으나 그런 수고를 감수할 수 있을 만큼 아주 근사한 곳에 위치한 도서관이었다. 시설 면에서는 솔직히 다른 공공도서관과 별다를 부분이 없었지만 산꼭대기 독특하고 아름다운 장소가 주는 매력만으로도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한다. 뭔가에 집중하다가 문득 내려다본 창밖 풍경이 이렇다면 정말 공부할 맛이 나겠구나 싶을 정도로.

마을버스를 타고 온 길을 되돌아갈까 하다가 크게 마음먹고 올라온 길과 다른 방향으로 능선처럼 이어진 산복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 보기로 했다. 올 때는 쉴 틈 없이 지도와 목적지로 가늠되는 곳을 확인하느라 못 보고 지나친 것들도 제대로 보고 싶었다.

땀으로 샤워한 듯 찝찝했던 기분을 싹 가시게 만드는 산 아래 펼쳐진 전경을 내려다보며 와, 어떻게 저기서 여기까지 걸어왔을까 스스로에게 감탄했다. 예전에는 지금 지명에 쓰이는 부() 대신 부()가 쓰였다는 걸 어딘가에서 본 기억났다. 과연 산이 많기는 많았다. 주위를 둘러봐도 산이 그토록 많은데 부산에 올 때마다 그저 바다만 따라다녔던 이유가 떠오르질 않을 정도로.

산 아래 시원하게 펼쳐진 도심 전경과 멀리 바다까지 내려다보며 내가 만났던 부산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비로소 아주 조금은 그들의 패기와 모험심을 이해할 수 있을 듯도 했다. 이토록 높은 곳에서 하늘과 바다와 바람으로 자란 그들에게 삶을 바라보는 방법은 달라도 크게 달랐을 것이라고. 어쩐지, 어디를 다녀도 유난히 부산 사람이 많더라니, 그래, 이런 풍경을 보면서 나이 들면 큰 꿈을 꾸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겠다 싶었다.

한편으로는 아랫동네로 내려가 살지 못 하고 살기 불편한 산동네에서 오밀조밀 모여 살아야 하는 모습이 도심과 바다의 화려함에 묻히는 듯 해, 산복도로의 풍경을 그저 아름답고 신비롭게만 바라보던 마음을 환기해주기도 했다. 사는 이들에게는 삶을 살아내는 터전으로 존재해왔던 곳이 방문자인 내게는 여럿의 모순적인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묘한 곳이었다.

올라올 때보다 내려가는 길이 수월할 줄 알았는데 체력적으로는 그럴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결코 쉽지 않았다. 이것저것 생각할 거리가 많아 오히려 심정적으로는 벅차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조금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발품을 팔아 한 것은 별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살게 될 동네를, 또 그 주면을 둘러보았을 뿐이니까. 그러나 나는 벌써 몰랐던 부산의 일부분을 하나 발견해냈다. 새로 알고 만나 사귄 사람의 면면을 찬찬히 살펴보듯, 오롯이 나만의 시선으로 부산을 바라보는 법을 산들과 도심의 풍경과 산복도로를 통해 배웠다.

그리스 산토리니나 이탈리아 피렌체란 문구처럼 과장되거나 혹은 그럴싸한 묘사들로 실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그간의 광고 자료들을 생각해보았다. 내가 몸으로 만난 부산은 애초의 기대와 다소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새롭게 알게 돼 기쁘고 반가운 면도 많았다.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마음에 담았을 때 그 대상들로부터 오는 마음에 착 감기는 감동은 의외의 것이라 더욱 신선했다.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또 무언가 새로운 장·단점을 발견할 때마다 그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지는 법이기도 하고. 이 모든 것들이 마치 전혀 몰랐던 사람을 어느 날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기 시작하니, 그때서야 비로소 그 사람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던 연애의 과정과 닮아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 연인과 헤어지듯 부산을 떠나 살게 될 날이 오더라도 지금부터 알아갈 부산의 모습이 문득 문득 내 삶을 파고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혈혈단신 이 도시에 자리 잡았으나 발 디딘 이곳이 나의 또 하나의 고향이 되고, 오래 만난 애인이 되어 곁을 지켜줄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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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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