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일로 상품 진열대 같은 종류의 물품들을 찾고 있었는데, 회사 대표의 위시리스트는 경사도가 있는, 상품을 세워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쩌다보니 찾는 아이템들마다 모양새가 대충 삼각형.

 

 

 

  그러니까 대충 아래 같은 느낌...

 

 

 

 

 

 이런식이라든가...

 

아님 이런식.

 

 

 

 

  다 좋은데, 문제는 빗변의 길이를 알아야 회사 상품인 책, 엽서 등을 진열했을 때 어떠 느낌일 지 알 수 있을텐데 어디에도 빗변 길이는 표시가 안 되어 있다는 점. 에이 몰라, 하고 무시하려던 순간 갑자기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이었던 수학선생님이 말씀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니들은 수학이 사는 데 아무짝에도 쓸모 없을 것 같지? 살아봐라. 필요한 순간이 오나 안 오나."

 

 

 

  초등학교 때는 수학경시반까지 했었는데 중학생이 되자마자 수학은 찍어도 풀어도 100점 만점에  4-50점대, 고등학교 때는 80점 만점에 10점대를 꾸준히 유지해온(?)나에게 수학은 점수 깎아먹는 과목이었다. 산수만 마스터하면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다고 생각했고(지금도 솔직히, 그렇기는,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수학이라는 단어는 내 머릿속의 지우개가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홍 선생님의 저 말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삼각형, 그래 삼각형이 문제였지. 내 머리가 포맷된 것이 아니라면 분명히 내게도 삼각형 두 변의 길이를 알 때, 혹은 끼인각을 알 때 나머지 변 구하는 방법 쯤은 기억의 창고 어디쯤 저장돼 있을 것이었다.

 

 

 

  현재 고등학생들이 이 포스팅을 혹시라도 보게 된다면 나를 비웃을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결과적으로 기억의 저장고 안에서 수학 공식 하나조차 건져내지 못 했고 심지어 검색을 통해 공식을 알아낸 후에도 싸인, 코싸인, 비율 같은 말들이 낯설어 이런 미ㅓㅏㅈ댜ㅓㄹ;ㅐ댜ㅓ래;ㅑㅓ래더 라고 욕을 해야 했다.

 

 

 

  물론 이걸 몰랐다고 해서 내 삶이 크게 달라지거나, 주변인들에게 멍청이 취급을 당하는 것은 아닐테지만(아마도)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상당히 참담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한 번 외운 건 단박에 까먹기 일쑤,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평생 주기적으로 한 번씩은 무슨 일이든 기억해내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이 슬퍼졌다. 그리고 다시 생각나는 선생님의 말.

 

 

 

  <수학이 사는 데 아무짝에도 쓸모 없을 것 같지? 살아봐라. 필요한 순간이 오나 안 오나>

 

 

 

  내가 수학공부를 제대로 안 한 걸 후회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다만 수학 공식을 이런 식으로도 쓸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외우는 방법 말고 다른 공부 방법을 제공받았어야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회사에서 진열대 빗변의 길이를 구해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으며 무조건 외워서 시험 잘 보고 끝낼 생각만 하지 말고, 얘들아, 왜 그런지 생각이라는 걸 좀 해라, 라는 말을 들었어야 했던 건데.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수학 물리가 전체적으로 이해에 초점을 맞춰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 나 같은 삼십대 수학 무식이가 증명하듯이, 암기된 공식은 기억 안 나면 끝이다.

 

 

  어제 점심에 제육볶음을 먹은 것을 잊고 오늘 또 제육볶음을 시킨 뒤 요즘 고기가 왜 이리 질리지라고 말하는 슬픈 직장인의 혼잣말 만큼이나 슬픈 일을 겪었다. 흙흙 ㅠㅠ.  아무리 수학을 못 해도 직각삼각형의 빗변 길이를 맞추는 문제는 외운 공식 덕에 틀려본 적이 없었던 평범한 문과 학생이 서른두살이 되어 줄자로 대충 비슷한 사이즈 삼각형을 만들어 미션을 해결했다는 그런 슬프고도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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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중요한 사람과 함께 했기 때문에 매순간이 특별하게 남기도 한다.

  어느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함께한 사람들을 의미있게 만들기도 하고.

 

  매순간을 특별한 일상으로 보내게 해주었던 많은 사람들을 가졌으면서도 왜 이리 사람이 고픈가를 고민하던 중에 문득,

 

  '내게는 미친듯이 뜨거웠던 순간이 없었구나'

 

깨닫는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순간이 너무 뜨거워서 견딜 수 없었던 적이 없었구나.

 

  그래, 욕심이 너무 많은 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좋은 사람들을 갖었으니 뜨겁지 않으면 어떤가 싶을 것도 같지만, 그러다가도 왈칵 왈칵 내 안을 드나드는 뜨거움에 대한 갈망, 그걸 어찌하지 못 해 죽겠다. 내 안에 어떤 뜨거움이라도 있기는 하다면 그것은 뜨것운 것을 향한 내 마음 자체가 뜨거운 것일 테다.

 

  달아올라 손끝도 못댈 정도로 뜨거워져보고 싶다. 보이지 않았던 작은 불덩이가 불어나고 불어나 인생의 한 순간을 활활 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활활 타서 잿더미가 되는 광경을 지켜보고 싶다. 아, 이제 끝났구나 하는 걸 느끼고 싶다.

 

  어리석은 걸까.

  쉬운 길을 놔 두고 복잡한 길로 들어서고 싶어하는 걸까.

  정직하고 곧은 내 몸은 아직도 나와 맞지 않다.

  내 몸이 나와 맞지 않아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나는 뜨거운데 몸은 미적지근해서?

 

 

 

 

  그냥 이런 고민들을 한다. 요즘 뭔가 삶이 다시 재미없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변화, 변화, 뜨거운 불덩이를 안고 변화의 순간이 내게 다가오기를 숨죽여 기다리는 중이다. 봄이 왔는데도 시린 손발을 뭔가가 덥혀 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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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오랫동안 안부 정도만 물으면서 연락을 이어오던 한 지인이 최근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사회, 경제, 정치, 문화, 예술, 연예에 박식하고 신문, 잡지, 뉴스 등에 언급되는 거의 모든 일들에 대해 대부분 3초 안에 대답하는 것이 가능한 기이한 인간이다.

그가 '난 고상한 사람이 좋아. 지식 없는 사람들은 진짜 후지거든.'이라고 말하기 전까지 나는 그가 인간적으로도 싫지 않았었다.

그는 불합리를 참지 않고 의리있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었는데, 저 말 한마디로 '무식한 사람들'을 그가 정한 범주의 사각 지대에 배치시켰다. 그것이 나를 너무나 불편하게 만들었다.

물론 나도 이 세상에 후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동의한다. 그런데 무식해서 후진거랑 인간성이 후진 건 정말 다른 문제다. 한 카테고리로 묶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지식 없는 사람들이 후지다는 말에 바로 반박하지 못했던 것이 혼란스러웠다. 사실 내 마음 깊은 곳에도 그런 생각이 자리잡혀 버린 것이 아닐까. 해서, 지금은 만남을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관계를 좀 멀리 떨어뜨리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착한 사람 코스프레 같은 걸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옳다고 믿는 내 가치관을 좀먹는 이와 가까이 하기에 아직 내 '멘탈'이 충분히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내 삶을 지탱해주는 올바른 지침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만든 지 얼마 안 되어 자꾸 의심이 드는 것이다. 1+1=2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피타고라스가 나타나서 틀렸다고 하면 아, 그렇구나 하게 될 것 같은 심정이라고나 할까.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내가 잘 모르는 일들이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무식 때문에 자주 슬프다. 세상을 다각도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으면서 조용히 사는 것을 선호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를 상처입힐 수 있는 가능성'이 나를 두렵게 한다. 나야말로 아는 게 없는데 아는 척 하기 바빠 '이해'는 뒷전으로 미루게 될 것이 걱정된다.

대개의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많은 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만나는 이들마다 모르는 것이 없는 것처럼 굴어서 인간 관계 자체에 회의감이 든다. 어떤 분야를 이야기 해도 막힘 없이 말하는 이들은 수두룩한데, 정말로 무엇인가를 가슴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주 만나봐야 나에게 득 될 것이 없는 것 같다.

지식이 좀 없어도 따뜻하고 똑똑한 사람들은 많다.
가능하면 그런 분들과 교류하면서 모르는 것은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로 더불어 살고(더불어 산다는 말을 타인의 삶을 바꾸는 수준까지 개입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다.

아는 것 많고 잘난 사람들은 회사에도 거래처에도 넘쳐 나는데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줄 사람들까지 그래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관계를 만들면 절대 행복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덧 > 월요일마다 나는 자꾸만 삶, 관계, 행복 같은 걸 깊이 깊이 생각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일 하기 싫어서 핑계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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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와 새삼 깨달은 것마냥 굴 이유도 없지. 나는 뼛속까지 질투라는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이 취미인 것처럼  굴던 사람 아니었나. 그리고 나의 질투는 거의 언제나 내가 가졌어야 할 모든 것(사람을 포함해서)을 누군가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할 때 최초로 발생했다. 나는 내 것이어야 했던 것을 가지게 된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취미에도 없던 만화를 그리거나 코카콜라 전광판을 좋아하게 되거나 피아노를 초급부터 다시 독학하기도 했었다. 전부다 어영부영 하다가 관두었는데 그것은 어차피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했구나, 라는 깨달음(사실은 자포자기에 가까웠다) 때문이었다. 여기까지가 학창시절 이야기 쯤 되는 듯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게서 극단적으로 멀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아, 내가 좋아하는 일에 발 하나쯤 담궈봤으니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라는 문장으로 점철된 날들이었다.

 

  대학 때부터는 상황이 조금 나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나온 학과는 성적에 맞춰서 어쩌다보니 가게 된 것이었지만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질투 덕이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질투는 전처럼 무엇을 포기하게 만드는 결과를 만드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질투로 시작된 일들이 글을 쓰는 아이들 틈바구니에서의 숨막히는 공기를 참을 수 있게 해주었고, 나를 발악하게 하여 어떤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해주었고, 친구를 만들어주었고, 수많은 실패를 동반한 경험까지 주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다. 나는 질투가 가진 힘을 믿는다. 질투는 때때로 나를 나락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오늘 같은 날엔 무덤 같은 일상으로부터 악착같이 기어나올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한다.

 

  존재만으로도 나를 일으켜세우는 사람, 질투하게 만드는 사람, 뛰어넘어보라며 기꺼이 내 앞에서 달려주는 사람을 발견한 날의 기쁨. 오늘, 숨막히게 아름다운 사람을 발견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을, 그 이상을 갖고 싶다. 집요하게 스토킹(?)하여 쪽쪽 다 뽑아먹어야지.

 

  아... 난 왜 마지막이 매번 이리 진중하지 못하단 말인가!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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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관계 없는 이야기를 시작해서 좀 미안하다. 그런데, 내가 미안하다고 해서 누가 볼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좀 지껄여볼게."

 

 

 

 

1.부산에 내려온 지 6개월에 차에 접어들었다. 12월이 지나면 반년을 부산에서 산 셈이다. 그런데, 나는 돈을 모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안 모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모으는 것 같기도 하다. 당장 뭔가 하고 싶은데 여유가 없는 것이 괴롭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풍족하면 반드시 다 집어치우고 다른 일을 하고 싶어질 것이 뻔하니까? 글쎄. 잘 모르겠지만.

 

2.살아보려고 발악하는 동안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 내년이면 내가 갑자기 서른, 서른 하나, 서른 둘이 된다. 서른은 인터내셔널 에이지로 쳐서 그렇고 서른 하나는 대한 민국이 인정하는 법적 나이이고, 서른 둘은 울 엄마가 진짜로 나를 낳은 년도를 기준으로 따진 나이다. 나는 지금도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내 나이를 바꿔가며 살고 있다. 타국에서 만난 친구들에게는 내가 곧 서른이 되고(사실 내 나이 따윈 신경도 안 쓰겠지), 학교와 직장에서 만난 지인들에게는 서른 하나, 가족과 아주 특수한 지인 몇에게는 서른 둘이 된다. 대개는 그냥 곧 서른 하나가 되는 여자로 살지만. 아무튼 최근 나이 때문에 내가 또 개족보를 만들 뻔해서... 예의만 지키면 되지 나이까지 순서를 매겨야 하나. 어차피 우리가 죽는 데는 순서 없잖아?

 

3.나는 왜 이렇게 낡아빠졌을까, 여기 저기 녹이 슬어 제 역할을 하지 못 하는 부위들이 속출하면서(정신상태도 포함해서) 일의 능률은 떨어지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일 자체에 대한 열정이 없다. 내가 가증스럽다. 매번 타협안을 선택해놓고, 1순위를 하지 못했다고 울고 있는 꼴이라니. 언제나 결정한 것은 나였다. 휘둘린 것도 나였다. 남들이 강요한다고 뭐든 다 그대로 해서는 안 되는 걸 몰라서가 아니라, 모두가 아니라는 길에 서려 있을 위험을 떠안고 싶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의 나는 내가 좀 한심하다.

 

4.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 여덟 글자로 만들어진 한 문장으로 현재 내 모습을 명확히 보여줄 수 있다. 나는 나만 내가 뿌려놓은 말을 수습하려고 살고 있다. 책임감, 그것이 없었다면 난 벌써 노숙녀가 됐을 걸.

 

 

 

 

 

 

 

 

 

Anyway, 요즘 이렇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좀 끄적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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