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오랫동안 안부 정도만 물으면서 연락을 이어오던 한 지인이 최근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사회, 경제, 정치, 문화, 예술, 연예에 박식하고 신문, 잡지, 뉴스 등에 언급되는 거의 모든 일들에 대해 대부분 3초 안에 대답하는 것이 가능한 기이한 인간이다.

그가 '난 고상한 사람이 좋아. 지식 없는 사람들은 진짜 후지거든.'이라고 말하기 전까지 나는 그가 인간적으로도 싫지 않았었다.

그는 불합리를 참지 않고 의리있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었는데, 저 말 한마디로 '무식한 사람들'을 그가 정한 범주의 사각 지대에 배치시켰다. 그것이 나를 너무나 불편하게 만들었다.

물론 나도 이 세상에 후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동의한다. 그런데 무식해서 후진거랑 인간성이 후진 건 정말 다른 문제다. 한 카테고리로 묶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지식 없는 사람들이 후지다는 말에 바로 반박하지 못했던 것이 혼란스러웠다. 사실 내 마음 깊은 곳에도 그런 생각이 자리잡혀 버린 것이 아닐까. 해서, 지금은 만남을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관계를 좀 멀리 떨어뜨리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착한 사람 코스프레 같은 걸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옳다고 믿는 내 가치관을 좀먹는 이와 가까이 하기에 아직 내 '멘탈'이 충분히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내 삶을 지탱해주는 올바른 지침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만든 지 얼마 안 되어 자꾸 의심이 드는 것이다. 1+1=2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피타고라스가 나타나서 틀렸다고 하면 아, 그렇구나 하게 될 것 같은 심정이라고나 할까.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내가 잘 모르는 일들이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무식 때문에 자주 슬프다. 세상을 다각도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으면서 조용히 사는 것을 선호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를 상처입힐 수 있는 가능성'이 나를 두렵게 한다. 나야말로 아는 게 없는데 아는 척 하기 바빠 '이해'는 뒷전으로 미루게 될 것이 걱정된다.

대개의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많은 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만나는 이들마다 모르는 것이 없는 것처럼 굴어서 인간 관계 자체에 회의감이 든다. 어떤 분야를 이야기 해도 막힘 없이 말하는 이들은 수두룩한데, 정말로 무엇인가를 가슴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주 만나봐야 나에게 득 될 것이 없는 것 같다.

지식이 좀 없어도 따뜻하고 똑똑한 사람들은 많다.
가능하면 그런 분들과 교류하면서 모르는 것은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로 더불어 살고(더불어 산다는 말을 타인의 삶을 바꾸는 수준까지 개입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다.

아는 것 많고 잘난 사람들은 회사에도 거래처에도 넘쳐 나는데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줄 사람들까지 그래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관계를 만들면 절대 행복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덧 > 월요일마다 나는 자꾸만 삶, 관계, 행복 같은 걸 깊이 깊이 생각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일 하기 싫어서 핑계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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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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