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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텐트에서 카라반으로 옮겼다. 목님 일행과 같은 공간에 거주하게 됐다. 언니네는 침대 나와 규는 각자 소파 하나씩. 결국은 소파 쉐어인 셈이지만 어찌 되었든 텐트 생활은 오래 해서 지겹기도 하고 주변 프렌치들이 엄청난 소음을 밤바다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조용한 공간을 얻으 것만 해도 감지덕지한 상황이다.


  어쨌든, 2주만에 들어갔던 농장에서는 인원감축을 해버려서 나는 다시 실업자 신세다. 여기 저기 이력서를 돌렸지만 듣기도 말하기도 여전히 안 되는 나는 일구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도 더 노력해봐야겠지.


  우리 일행을 무척 많이 도와주고 있는 여기 관리인 아저씨 숀이 오늘 내게 컨츄리 클럽에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는 사실을 목님께 들었다). 나중에 다시 물으로 왔는데 다 같이도 아니고 나만, 가자는 말에 식겁해서 못 알아듣는 척 하며 거절했다. 뭐랄까, 아저씨 푼수같다. 설마 나한테 관심있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_- 고마운 건 너무나 고마운데 아무리 고마워도 둘이서만 밥 먹으로 가자는 건 그 의미라는 게 좀.... 


  이 와중에 남자친구는 한국간지 3일만에 문자를 보내서 네이트온에 들어올것처럼 해놓고 또 감감 무소식이다. 당최 얘는 나랑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네. 딴 남자도 못 만나게 헤어질 것도 아니면서 나한테 잘 하지도 못 하고 나 참. 난 왜 매번 죄다 세심함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것들을 남자친구라고 사귀게 되는 걸까. 내가 먼저 좋아한 사람은 나를 안 좋아해주고. 도대체가 내 맘대로 되는 사람도 삶도 참 없다 없어. 하하.








  자,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아 모르겠다. 일단 오늘 밤은 CSI 뉴욕 시즌 6이나 보면서 긴장 좀 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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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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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406호의 입장 2011. 6. 1. 21:45




  생일이라고 처음 보는 외국애들에게 떠벌리고 축하를 받아냈다, 일하던 도중에.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구해서 반소절 쯤 들었나. 남자친구는 내 생일을 페이스북에서 축하했다. 심지어 지난 주에 내 생일도 정확히 알게 됐지만. 돈도 없고 일은 인원감축 때문에 짤릴 위기에 처했으며 호주는 전혀 아름답지 않고 영어는 여전히 안 들리고 웨스턴 남자들에 대한 공포는 가시지 않아 추억으로 남길 연애 따윈 꿈도 못 꾼다. 



  중학교 때 친구 둘이 학교 벤치에서 한 번, 박양이 챙겨준 생일 두 번, 제작년 학교 앞에서 선후배 동기와 우연히 날짜 맞아 챙기게 된 것 한 번, 이거 빼면 생일에 이상하게 혼자이거나 혼자인 상황을 일부러 만들어내거나 축하를 받고 싶지 않아하거나 받을 수 없는 상황(내가 까먹는다던지 가족들이 까먹는다던지 하는)에 처하곤 했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했던 생일은 제작년이었는데 그마저도 이후의 추억 덕분에 가장 거지 같은 날 중 하나로 기억이 수정됐다. 애인이 있을 때에도 생일만 되면 싸우거나 떨어져있거나 했었고 애인이 없을 때에는 내가 별로 챙기고 싶은 적이 없었고 축하를 받는다는 게 좀 멋쩍기도 했고, 뭐 그랬었다.



  오늘은 생일이고 나는 타지에 있고 함께 있는 친구들은 상황이 안 좋아 뭘 한다는 것 자체가 흥이 안나고(심지어 미안하다) 남자친구라는 놈은 채팅하다 술마시러 나갔는데 당최 생각이 있는 놈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그냥 누가 축하 노래를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올 해는 한 달 전부터 카운트다운을 하며 응원가 비슷한 노래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노래 싫은데 그래도 사랑받고 있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었는데.
나는 나를 사랑해서 늘 응원해주고 싶고 응원해주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타인의 다독임을 간절하게 원한다.


  왜냐하면 나도 사람인데, 별로 쿨하지도 않고 외로움 많이 타고 아플 때도 많은 사람인데, 왜 생일까지도 남 챙기는 데 급급해서 괜찮아요, 내가 할까요, 어떤게 불편한지 말해봐요 따위의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필요할 때 해줄 수 있는 만큼은 해주겠다고 하고 누구한테 피해 주고 살아온 것도 아닌데 왜왜왜왜왜 이런 우울한 밤을 보내야 하는 걸까. 난 잘 못 살아온 걸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아주 담담하게 일상생활을 이었지만 마음이 허하다. 대여섯 어린 애처럼 생일 케익이나 바라고 이러는 게 아니다. 쓸쓸하다, 외롭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고 그런 사람이 나를 다독이며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꼭 안아줬으면 좋겠고 힘들지만 가끔은 술이나 한 잔 같이 마시며 노닥거릴 사람이 주변에 한둘쯤은 언제나 있었으면 좋겠고 내가 까먹었을 때에도 내가 어떤지 기억해주는 사람이 나도 화들짝 놀랄 만한 순간에 연락을 주어 내게 힘을 주었으면 좋겠고 나를 좋아해주니까 나도 좋아할 수 있는 사람에게 참 고맙다, 행복하다, 괜찮다, 네가 있어서 안심이다라고, 말, 했으면, 정말, 좋겠고.




  내게 힘을 주는 사람들에게 언제라도 응원가를 불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그게 가장 좋겠고.






  내가 아주 큰 것을 바라는 걸까. 호주에 와서도 이런 생각만 한다. 괜찮을까, 오늘이 지나면, 조금, 나아질까.





  어쨌든, 노래는 내가 나한테 불러줘야겠다. 힘을 좀 내야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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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청하고 거짓말 잘 하고 또 잘 속고 웃고 울고 짜증내고 아파하고 동조하는 것까지 너무 심한 너지만 그래도 사랑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앞으로 살아갈 날들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해주렴.



사랑해, 모든 일이 다 잘 될 거야,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이토록 스스로에게 관대해 지는 건가봐. 자꾸 억압하려고 하지 말고 젊은 나날 동안 조금만 더 굴러먹으며 살자, 그러고 싶잖아 너.






아 배고프다. 그래도 괜찮아, 눈뜨면 일가야지. 그리고 즐겁게 일하자. 그리고, 미리 생일 축하를 하자. 뿅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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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406호의 입장 2011. 3. 29. 14:50



  아주 아주 오랜 기간이 걸려서 드디어 졸업을 한 동생은 졸업식에 혼자 다녀왔다고 한다. 나라도 한국에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선물이라도 사줄까 하고 아주 아주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더니 선물 얘기는 뒷전이고 애인과 헤어졌다는 말부터 전하는 동생이 조금 짠했다. 몇 년을 사귀고도 이렇게 헤어지는 걸 보면 결혼으로 골인 가능한 인연이란 참으로 만나기 어려운 거로구나 싶다. 그렇다고 내가 결혼하고 싶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나 같은 애가 결혼하면 가정이 흔들려서 곤란하지. 난 별로 좋은 가족 구성원은 아니니까.


  물고 빨고 핥고 어쩌고 하는 일도 이십대 초반이었을 때만큼 즐겁진 않고, 막 사는 것도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지금,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농담처럼 지껄이는 청초한 연애? 혹은 성공을 위해 앞만 보기?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평범하게 살기? 모르겠다. 그저 나는, 적어도 울고 짜고 하는 일이 최대한 적은 방향으로 걷고 싶다. 행복해지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원.








  아직도 마음은 오락가락 한다. 어쨌거나 연애는 연애니까 즐겨야 할 텐데 애써 노력을 하는 것이 어째 더 역효과만 나는 것 같아서 그냥 마음을 받치고 있던 손까지 다 놔 버렸다. 어쨌든, 만나는 동안 나한테만 잘 하면 된다고 마인드 컨트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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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번 방

406호의 입장 2011. 3. 25. 14:26

으로 옮겼다. 옮겨졌다고 해야 하는 건가.




  요즘은 계속 그런 생각을 한다.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계속해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침대 위를 뒹굴거리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라고. 욕먹을 소리인 줄이야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날씨 좋고 한가하고 계획없이 빈둥댈 수 있는 하루를 보내면 다음에 찾아올 빡빡한 일상이 무섭도록 싫어지니까 어쩔 수 없겠지.






  어쨌든, 텐트 생활을 접은 지도 며칠 째. 산다는 것은 참 예정에 없던 일들로 가득찬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같고, 뭐 그런 날들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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