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406호의 입장 2011. 6. 1. 21:45




  생일이라고 처음 보는 외국애들에게 떠벌리고 축하를 받아냈다, 일하던 도중에.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구해서 반소절 쯤 들었나. 남자친구는 내 생일을 페이스북에서 축하했다. 심지어 지난 주에 내 생일도 정확히 알게 됐지만. 돈도 없고 일은 인원감축 때문에 짤릴 위기에 처했으며 호주는 전혀 아름답지 않고 영어는 여전히 안 들리고 웨스턴 남자들에 대한 공포는 가시지 않아 추억으로 남길 연애 따윈 꿈도 못 꾼다. 



  중학교 때 친구 둘이 학교 벤치에서 한 번, 박양이 챙겨준 생일 두 번, 제작년 학교 앞에서 선후배 동기와 우연히 날짜 맞아 챙기게 된 것 한 번, 이거 빼면 생일에 이상하게 혼자이거나 혼자인 상황을 일부러 만들어내거나 축하를 받고 싶지 않아하거나 받을 수 없는 상황(내가 까먹는다던지 가족들이 까먹는다던지 하는)에 처하곤 했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했던 생일은 제작년이었는데 그마저도 이후의 추억 덕분에 가장 거지 같은 날 중 하나로 기억이 수정됐다. 애인이 있을 때에도 생일만 되면 싸우거나 떨어져있거나 했었고 애인이 없을 때에는 내가 별로 챙기고 싶은 적이 없었고 축하를 받는다는 게 좀 멋쩍기도 했고, 뭐 그랬었다.



  오늘은 생일이고 나는 타지에 있고 함께 있는 친구들은 상황이 안 좋아 뭘 한다는 것 자체가 흥이 안나고(심지어 미안하다) 남자친구라는 놈은 채팅하다 술마시러 나갔는데 당최 생각이 있는 놈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그냥 누가 축하 노래를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올 해는 한 달 전부터 카운트다운을 하며 응원가 비슷한 노래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노래 싫은데 그래도 사랑받고 있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었는데.
나는 나를 사랑해서 늘 응원해주고 싶고 응원해주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타인의 다독임을 간절하게 원한다.


  왜냐하면 나도 사람인데, 별로 쿨하지도 않고 외로움 많이 타고 아플 때도 많은 사람인데, 왜 생일까지도 남 챙기는 데 급급해서 괜찮아요, 내가 할까요, 어떤게 불편한지 말해봐요 따위의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필요할 때 해줄 수 있는 만큼은 해주겠다고 하고 누구한테 피해 주고 살아온 것도 아닌데 왜왜왜왜왜 이런 우울한 밤을 보내야 하는 걸까. 난 잘 못 살아온 걸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아주 담담하게 일상생활을 이었지만 마음이 허하다. 대여섯 어린 애처럼 생일 케익이나 바라고 이러는 게 아니다. 쓸쓸하다, 외롭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고 그런 사람이 나를 다독이며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꼭 안아줬으면 좋겠고 힘들지만 가끔은 술이나 한 잔 같이 마시며 노닥거릴 사람이 주변에 한둘쯤은 언제나 있었으면 좋겠고 내가 까먹었을 때에도 내가 어떤지 기억해주는 사람이 나도 화들짝 놀랄 만한 순간에 연락을 주어 내게 힘을 주었으면 좋겠고 나를 좋아해주니까 나도 좋아할 수 있는 사람에게 참 고맙다, 행복하다, 괜찮다, 네가 있어서 안심이다라고, 말, 했으면, 정말, 좋겠고.




  내게 힘을 주는 사람들에게 언제라도 응원가를 불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그게 가장 좋겠고.






  내가 아주 큰 것을 바라는 걸까. 호주에 와서도 이런 생각만 한다. 괜찮을까, 오늘이 지나면, 조금, 나아질까.





  어쨌든, 노래는 내가 나한테 불러줘야겠다. 힘을 좀 내야겠으니까.

블로그 이미지

Felis G.

다시 시작된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