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0ml짜리 맥주를 (아주 오랜만에) 마셨다. 냉장고 문을 열고 살그머니 꺼내서 빈 방에 들어가 혼자 조용히.
술을 마시고 나서 이런 저런 헛소리들을 지껄였던 기억이 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완성되었던 글이라던가, 동네 떠나가라 불렀던 노래, 혹은 혼란한 정신을 틈탄 고백 같은 것들.
어째서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 못 해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인가.
대전에 내려와서 마지막 졸업 인증용 토익 시험을 봤고,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고, 악보도 없이 외고 있는 간단한 피아노 연주를 했고, 엄마와 한 번 싸우고, 할머니 대신 괜히 설거지를 해보고, 이렇게 혼자 맥주를 한 병 마셨다. 이상한 것은, 헛소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헛소리를 하지 않는다. 아무리 혼자 술을 마셔도.
어쩐지 슬프다. 괜히 술을 마시면 소설이나 희곡이나 시 같은 것들이 써지곤 하던 때가 그립고, 울다 웃으며 노래할 수 있었던 박력도 그립고, 내일이면 부끄러울 고백도, 그립다. 아픔도 슬픔도 모르는 청춘의 아가씨가 슬프다고 생각했던, 그런 날들.
이게 뭔가. 어째서 지금은 아프거나 슬프고 싶지 않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