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하나 꼴로 내 물건을 망가뜨리고 있는 범이 녀석 때문이다. 내 외로움 달래자고 키우기 시작한 것이 미안한 것도 컵이 깨지고 오르골이 망가지고 노트북 배터리가 부서지면 다 잊고 격하게 혼내긴 하지만, 네가 있어 참 다행이구나 한다. 2009년 8월 26일이 생일인 내 동거묘는 범이라는 고급스런 이름에도 불구하고 고은냥, 하고 점잖게 대답하는 대신 예뻐해달라고 조르거나 아무데서나 발랑 발랑 배를 까뒤집고 눕는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싼티가 대세라고 너까지 그러기냐 이 쉐끼루 범이, 라고 소리를 지르면 그제서야 야옹, 한다. 아이고 두야, 어처구니가 없어 또 웃게 된다.
확실히 불면이 사라졌다. 밤늦게 자는 건 이제 내 의지다. 한 번 누우면 어쨌거나 확실히, 푹 자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많이 고맙다. 나를 푹 재워줄 수 있는 남자를 이상형으로 꼽았던 걸 생각하면, 이 녀석이야말로 확실히 이상형이긴 한데, 아무때나 입을 들이밀며 뽀뽀를 요구하는 이상한 고양이라는 걸 알아챌 때마다 역시 사람 남자를 이상형으로 해야겠어, 라고 소리내 이야기하게 된다.
<덧붙임>
내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내게서 멀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물리적으로 멀어지니, 아, 정말로 마음에서도 멀어지게 되는구나. 다 마신 커피잔에 가라앉아 있는 찌꺼기에 혀를 대보고 으헉, 맛없어, 하듯이, 요즘은 참 사람들이 으헉, 맛이 없다. 그 사람들도 날 맛보면 전 같은 맛이 안나네, 하며 혀를 끌끌 차려나.
그래도 다음주는 연말 분위기를 한껏 내며 계속 계속 사람들을 만나고 다닐 테다. 수다를 떨고 침묵하기도 하고 술을 마시고 차를 마시고 마구마구 시끌벅적하게. 작년 연말을 내내 혼자 보냈을 때 단지 곁에 말섞을 사람이 없다는 사실 만으로도 질질 짜게 되곤 해서 곤란했었다.
아, 그리고, 이 새벽에 문자를 주고 받거나 통화를 할 수 있는 지인이라는 것이 내게 아직은 남아 있어 세상 모든 것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알고 보니 난 아직 참 괜찮은 사람인 거 아닐까? 킬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