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진짜 싫어한다. 하지만 이 상태로 전혀 모르는 곳에서 용감하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스타벅스 뿐이라 어쩔 수 없이 들어왔다. 게다가 여기서 가장 큰 사이즈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점원이 물었던 것이다.
"어떤 사이즈를 원하세요?"
"큰 거요."
"네? 어떤 큰 거를 말씀하시는지?"
"큰 거요, 그냥 제일 큰 거 주세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솔직히 맛 없다. 그런데 거의 자동반사되는 것처럼, 제일 큰 거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말 하고 나서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일, 그나마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드릴까요, 라는 말에 예, 라고 안 한 게 어딘가 싶다.
난 도대체 이 부천이라는 동네, 별로다. 아니지,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별로라는 것이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 복잡한 신도림역을 지나며 역안에서 스트립쇼를 하기엔, 난 너무 건전하고 몸매가 안 예쁘고 까칠한 성격을 지녔다. 음, 별로 상관 없는 말이려나.
그래도, 며칠 만에 섭취하는 카페인이라 그런지,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위안이라도 삼아야지. 하하. 양도 많고, 날 픽업해서 대전에 데려갈 동생놈은 지금 지인의 돌잔치인가에 가 있어, 시간도 붕 뜨고, 이렇게 몇 자 끄적이기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겠다. 움하하.
꽤 찌질한, 그러니까 나름 찌질했던 최근의 내 행동들은 전혀 반성하지 않기로 했다. 상대방에게 무척 미안하긴 하지만, 그렇게라도 했으니 내가 이만큼 버틴 것 아니려나.
예전에 별로 친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주변인이었던 한 사람이 자살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많은 이들이 그를 소재 삼아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었다. 생각하길, 아 난 절대 주변인을 소재 삼아 다신 글 쓰지 않으리라, 이것이 추모인가 자기 위안인가, 이기적이구나 했었다. 내 손마디 뚝뚝 부러뜨려가며 참을 일이다, 라고, 참으로 대단한 결심을 했었지.
그러나, 지금 보니, 소재 삼은 것은 고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이었구나. 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에 관한 이야기였구나.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마음껏 모든 것들을 소재 삼기로 마음을 바꿔먹었다. 왜냐하면, 모든 이야기들이 다 내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본 것이고, 내가 아파한 것이고, 내가 안았던 것이며, 무엇보다도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므로.
아, 누가 나를 욕하랴. 내가 지금 그렇게 증오하던 스타벅스에 앉아 있는 것을? 맛없는 아메리카노를 젤 큰 사이즈로 시킨 것을? 시작도 못 해본 내 짝사랑에 대해 가슴앓이를 계속 할 것 같다고 예감하는 것을? 계속 이렇게 게으르게 살리라 다짐한 것을? 흥, 아무도 내 욕 못한다. 내가 비록 이렇게 살아왔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는 데 어쨌거나 열심히 해왔거든. 열심히 게을렀고, 열심히 짝사랑했고, 열심히 찌질했거든.
아, 좋구나. 이러한 자기위안. 자기비하보단 백 배 천 배 나은 것이었구나. 좋다.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좋구나,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