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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연쇄고리 2007. 3. 14. 03:33
  강의 중이었다. 두 번이나, 끈질기게 진동이 왔는데, 엄마였다. 강의는 30분이나 더 끝날 시간을 지키지 않고 지속되는 중이었고, 중간에 나갈 수가 없었다. 어쨌든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해왔고, 강의도 충실히 듣고 있다고 생각되어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은 상태였다.

  버스정류장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아빠가 받으시고는 잘 지내느냐고 하셨고 잘 지낸다는 말을 건냈고 엄마를 바꿔달라고 했다. 엄마는, 내 감이 틀리지 않았다면, 술을 마신 목소리였다.

  그간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은 이유는 취직도 못 했고, 돈은 축내는 주제에 할 말도 없고 미안해서였다. 엄마는 본인이 먼저 연락한 것에 대해 화를 냈다. 할 말이 없었다. 취직에 대해 물었다.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다고 대답했다. 겨우 아르바이트냐고 화를 냈다.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변명은 하고 싶어서, 야간 수업 들어가며 할 수 있는 직장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일단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고 있는데 그마저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엄마는 또 화를 냈다. 화를 내며 끊어버렸다.

  내 지갑에는 4천원이 들어있었다. 분명, 아침에는 3만원이 있었는데 강의 시간에 쓸 교재를 급하게 구입하고 복사비 만원을 지출하고 공부할 노트를 사고 버스 카드를 조금 충전했더니 그랬다. 술을 마시고 싶었는데, 돈도 없었고 같이 마셔줄 사람도 없어서 편의점에 들러 콜라와 소주 한 병을 샀다. 이제 지갑에는 2천원이 남아 있었다.

  통화 이후로 울음이 터지려는 걸 참고 참아 집앞까지 왔기에 오피스텔 방에 들어가자마자 왈칵 쏟을 줄 알았는데 눈물이 안 났다. 화도 못 내겠고, 대책도 강구하지 못 했다. 그냥 설거지하고 밥을 해놓고 술을 마셨다. 잠깐, 하품을 했기 때문인 것처럼 볼을 타고 뭔가 뜨거운 게 흐르긴 했으나, 그뿐이었다. 그냥, 더 이상 해봤자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아직까지 바깥 공기는 많이 차네, 이따위 말이나 지껄이면서.

  펑펑 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힘들어 죽겠다고 소리지르고 싶다고 생각한다. 죽을 것같이 술마시고 담배나 피워대면서 새벽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대학 시절 춥고 더러웠던 과방도 생각나고 좋아하던 남자들도 생각나고 그렇다. 그러나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울 수도 없고 곁에 있어줄 사람도 없고, 담배도 없고, 겨우 있는 건 소주 한 병인데 그것도 다 마시고 없다. 이게 뭔가.

  솔직히 나는 요즘, 사는 것이 지겹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되어서, 내심 기뻤었다. 등록금은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부모님께서도 내 공부를 이해해주실 줄 알았다. 대학원 생활이 힘들다고 해봤자 사실 그것은 즐거운 비명이었다. 그런데, 이제 아무것도 모르겠다.

  일자리도 구하지 못 했고 대학원에서는 관심도 없는 부과대 자리나 맡게 되었고 다음 학기 등록금은 없으며 부모님은 아직도 내가 공부하는 것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으신다.

  난생 처음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됐는데 결심이 서자 마자 모든 것이 난관에 부닥쳤다.

  어째서 펑펑 울지도 못 하는 건가. 아무도 안 보는데 숨어서 운다. 소리도 못 내고, 양도 적은, 그런 소심한 눈물만 난다.

  살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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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그만두려고 마음 먹을 때마다 못 그만두고
  미련하게 미련만 남기게 될 거라구요.

 




  멍청하게, 그래도 좋다. 계속, 그런 관심이라도 가져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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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오늘 만난 친구들에게처럼 힘들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맘 놓고 어린애처럼 마구, 칭얼거리고 싶었다는 말이다. 이럴 때 선생님 같은, 오빠 같은 애인이라도 있었다면, 태어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집에 돌아와있다. 어제 오늘 3만원이나 썼는데 그게 큰 돈은 아니겠지만, 지금 나에게는 너무나 사치스러운 생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집에 들어서자마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울어서 뭐 할거냐는 꾸중을 누군가 하는 것 같아 왈칵 쏟아내지는 못 했다.

  울고 싶다! 엉엉, 대성통곡 하고 싶다. 내일 다시 힘겨워지더라도 힘들어 죽겠다고 발악해보고 싶다.

  그러나 어쩐단 말인가. 나 스스로에게 힘들다고 하기에 지금 나는 너무 쇠약해진 상태이며 주위에는 다들 힘든 이들 투성이다. 가끔은 혼자서 해결해야 할 일에 대해 난 정말 못해먹겠다고 막무가네로 떼를 쓸 수 있다면.

  글도 써지지 않고, 공부도 되질 않고, 일자리는 여전히 없다. 그리고 나는 약해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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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취소

연쇄고리 2007. 3. 10. 19:29
  연주 언니와의 약속이 교통 체증으로 인하여 취소되었다.

  취소는 상관없는데 나는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고 얼굴에 파우더를 척척 바르고 있었다. 화장을 막 시작했는데 약속이 취소되니 뭔가 이제부터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붕-뜬 기분. 화장을 마쳐야 하는지, 화장을 지우고 잠이나 청해야 하는지, 누구라도 불러내어 홍대로 가 차라도 한 잔 마시고 와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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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내가 아무리 벽에 똥칠할 때까지 오래오래 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고 해도.



  힘들다는 것은 결국 힘들다는 말이다. 오래 살겠다고 백날 외쳐도 역시 살아가는 날들이 힘든 것까지 어쩔 수는 없다. 그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인정한다. 그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삶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지칠 때가 있다는 것, 그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지쳐 있을 법한 시기가 되었다.
  조금 더 버텨 보리라 한다. 이 시기를 버티면 곧 즐거운 시간도 가질 수 있을 거야, 라고.
 


덧) 생활과 학업에 곤란을 겪게 되니 연애 얘기나 하며 시시덕거리는 것이 스스로 못마땅하다. 나쁜 짓하다가 들켜서 벌을 받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고. 왜 꼭 이럴 때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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