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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다. 백수 되기 전 마지막으로 질러 놓은 공연이라 지난 달부터 도곤도곤 상태. 연주님을 꼬셔(?)서 나름 25일은 절대 외롭지 않게 공연 다녀오기, 계획은 성공했다. 어, 쨌, 든!



  좁은 공연장에 사람은 바글바글 했어도, 앞에 서 있는 아저씨 때문에 45도로 고개를 꺾고 무대를 바라봐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긴 했어도, 까딱까딱 이상으로는, 뜀뛰기 스킬을 발휘할 수 없었어도, 충분히 좋은 공연이었다. 



  무엇보다도, 관객들이 거의 전곡을 따라부르는 떼창의 아름다움은 너무 오랫만에 느끼는 터라 조금 울컥했다. 브로콜리 님들은 물론, 함께 한 관객들 완전 최고.








  그리고, 이룰 수 없는 꿈만 꾸던 2009년의 시간들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다시,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면서 잘, 살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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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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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인과 여행.




  할 말이 잔뜩이지만, 역시 할 말이 많을수록 말수는 줄게 되는군요. 입밖으로 꺼내는 순간, 기록으로 남겨지는 순간, 어쩐지 감정들이 흩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얼마간은 이대로, 조용히 입 다물어야겠습니다. 그래야겠어요. 나도 하나쯤 혼자서 히죽거릴 만한 일이 있어야하니까.





  갑자기 강원도였다가 갑자기 서울 내 방. 살짝 적응이 안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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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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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또-그러니까,



  전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우리들은 만났지 뭐예요. 한 분은 의정부. 한 분은 서울 서대문구, 한 분은 서울 강남구(맞나?), 그리고 저는 대전에 기거중이었으니까요. 우리들은 만나자마자 영화의 거리로 택시를 타고 달렸습니다. 티켓을 끊었구요, 점심 먹을 곳을 물색하다가 문제의 발단이 된 프레스센터로 들어갔어요.

  제가 유부초밥과 빵을 싸갔었는데 어찌나 배고팠더니 신나게 먹었죠. 근데 이상한거예요. 우린 지프 서포터즈니까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서포터즈 쉼터에는 피곤에 쩔어 잠에 취한 남자와 노트북으로 뭔가 열중하며 일하는 사람 몇 빼곤 너무 한산했거든요. 우리 일행은 먹고 떠들고 영화를 보러 가기 위해 나왔을 때에야 비로소 알았어요. 거긴 영화제 ID카드 소지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란 사실을요. 그들은 기자나 영화관계자들이었던 거예요. 그리고 우린 그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숙연해졌습니다. (그렇지만 어째서 아무도 우리를 내쫓지 않은 거예요! ㅋㅋㅋㅋ)

  자 그럼 이제부터는 사담은 집어치우고 본 영화들만 간단하게 나열해보겠습니다. 지난 번 부산영화제에서는 영화봤던 기억들을 다 지워버려서 제목도 생각이 안 나는 최악의 상황을 경험했거든요.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서 축제에 갔다 왔으면 내가 뭘 했는지정도는 알아야한다는 겁니다. -ㅂ-





5월 3일.

하나. 오후 2시, '입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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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막작인데 그 이후에 상영시간표를 보니 3일 아니면 볼 수 없기에 본인의 강력한 의지로 예매하였으나! 영화 끝나고 일행들에게 급사죄했습니다. 감독의 전작인 '언러브드'를 보고 나름 관심이 있었던 저는 영화가 끝난 직후 이 감독은 변태다, 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등장인물 중에 정상인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최고로 이기적인 주인공이 영화 내용을 마구 설명했구요, 나머지 인물들도 다 변태예요. 내 취향 절대 아닙니다. 교훈은 왕따 당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입니다. 그리고, 안내 책자에 나온 영화 설명 뭡니까, 대체! 난 멜로영화인줄 알고 봤단 말입니다!

둘. 저녁 8시, '어제와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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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영화 좋아합니다. 브레히트 연극 보는 것 같은 기분, 좋습니다. 어제의 사소한 잘못이 모든 내일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어요. 아름다웠던 그녀도 점점 추잡해져갔고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버림받고 말았네요. 내일은 더 나을거라는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지만요, 어쩐지 그 소망마저 아이러니 했어요. 다만 평론가의 강연은 좀. 끝까지 있기는 했지만, 뭡니까, 클루게 감독 소개부터 영화 내용 설명까지, 책자 보면 다 나오는 얘기만! 게다가 통역하시는 분도 별로. 유머와 위트 따위는 두 분다 우주로 날려보내신듯. 강연을 원했는데 설명문 읽고 나온 느낌이예요. 클루게 감독님께 이를거에요.(응?)

5월 4일.

하나. 오후 2시, '영원한 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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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 감독님 작품이라기에 무작정 예매할 때 일행의 추천에 오케이 해드렸는데, 아주 그냥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사진은 두 개입니다. "장자와 나비" 이야기에 관심있으시면 격하게 추천합니다. 어려운 얘기이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흔한 소재일 수도 있지만 보는 동안 아주 즐거웠어요. 으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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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 아저씨와 아저씨가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을 대비시키는 것도, 결말에서 강력하게 주제를 보여주는 것도, 이쁜 영상들도 좋았습니다. 내용 설명 따위는 안 합니다. 어려운 얘기인데 영화를 보면 아주 쉽습니다. 그러니까, 별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는!(그리고 귀찮음) ㅋㅋㅋ


둘. 오후 5시, '하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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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고, 이슬람교에 관한 것이라는 소재 때문에 일단 끌렸었는데, 이거 뭔가, 다 보고 나서 당황스럽습니다. 학부 때 이슬람 문화의 이해, 뭐 이런 제목의 과목을 수강하면서 관심을 가졌던 적이 한 때(?) 있었어요. 그 때 본의아니게 코란 암송을 여러 차례 들어 놓아 그런 건 친근하게 들렸는데요. 문제는, 주인공 남자 분이 해탈을 하셨는지 어땠는지 사랑을 포기해서 사랑을 얻었는지 말았는지 그런 건 그냥 전 별로 관심없었구요(원래 이런 사람입니다). 왜 여자주인공은 몇 번 나오고 안 나오는 겁니까! 이쁘게 생겨서 주목하고 있었는데 아쉬웠다고요. ㅋㅋㅋ
에, 그리고, 여주인공의 남편, 못됐습니다. 결혼했는데 아내의 사랑을 위해 순결을 지켜주다니 그러면 못 씁니다.(응?) 여주인공만 불쌍하게 됐잖아요. 첫눈에 반한 남자는 해탈해서 떠나고 남편도 도망가고, 그게 뭐예요.


5월 5일

하나. 오전 11시, '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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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루한 영화도 비교적 잘 볼 수 있다고 자신하던 것은 오만이었습니다. 두시간 가량의 영화가 마치 네 시간은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야말로 파멸의 영화였습니다. 일행들이 하나 둘씩 잠이 들었고 저는 참고 참으며 1시간을 버텼습니다. 영화 자체와 경쟁하면서 극장에 있는 것이 처음이었던 저에게 같이 보던 후배가 나중에 고백하길 나와 경쟁했지만 지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영화와 경쟁해서 진 게 아니라 다행이라며. 아, 결국 넷 다 자고 말았지만 간간히 깨서 볼 때마다 또 당황스러웠던 것은 계속 같은 장면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자주인공이 여자에게 매달리면, 여자는 그를 이용만 하고 버리고, 자다 일어나면 다시 남자가 여자에게 매달리고 있었어요. 그렇게 두 시간 후 극장을 나가는데 어떤 여자 두 분이 영화 줄거리와 내용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전주영화제 관객들의 수준은 참으로 높구나, 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둘. 원래 예정은 오후 2시 '내가 잊기 전에'

  그러나, '파멸' 이후 급속도로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겪은 덕에 다음 영화를 포기했습니다. 대신 경기전과 한옥마을을 둘러보고 기념품을 샀으며 전통차집 가서 모과차, 국화차, 팥빙수(응????)를 먹고 집으로 각자 돌아갔습니다. 다행히 차표는 매진되지 않았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그 외, 밤마다 술을 마시고, 거리에서 사진을 찍어대고, 우연히 거리 공연을 본다거나, 괜히 1시간 거리의 숙소까지 걸어가기도 하고, 전북대 앞에서 따로 오신 대학 선배 일행과 만나 치킨을 먹기도 했지요. 아, 그리고 우리가 머문 모텔방 화장실은 유리문으로 되어 있고 잠금 장치도 없어서 우리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나, 화장실 갑니다" 라고 예고해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처럼 제 정신머리는 축제 현장에 남아 떠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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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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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아름다운 유배지 2008. 3. 2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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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남산에서 찍은 서울의 모습.


아, 이 도시에서 살고 있다,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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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아름다운 유배지 2007. 9. 17. 01:33

  2년만에 찾은 양양, 아파트는 변함없이 그대로, 그 곳에서, 그렇게 있었다.


  숙박비는 없고 여행은 가고 싶고, 사실은 양양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서, 일행들을 졸라댔더랬다. 주말이라 서울을 빠져나가고 또 서울로 들어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힘 같은 것들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만 같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서, 나는 가끔씩 멍하게 시선을 둔 데 없이 창밖을 내다봤다.

  2년 전에 내가 두고 갔던 노란 우산도, 쓰레기 봉투도 그대로 있었다. 베란다 티테이블 곁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면 멀리 파도치는 모습이 보였고 가끔 뱃고동 소리가 들렸다. 익숙하기도 했고 아련하기도 했고 두려워지거나 화를 치밀어오르게 하기도 했다. 왜 그런지 나는 알 수 없었지만, 무엇이 나를 그토록 혼란스럽게 만드는지도 잘 몰랐지만 다만 머릿속에서 끝없이 울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이건 아니야. 지금 이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이렇게는 안 돼."

  토요일 밤, 술을 마시고 놀이터에서 빙글빙글 돌리는 놀이기구를 탔었다. 한쪽 다리에 중심을 두고 다른쪽 다리를 살짝 들면 회전 반대 방향으로 발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어찔한 느낌이 좋았다.

  그날 밤 일행들이 일찍 잠이 들고 나는 티비가 끝나는 시각까지 채널을 돌려가며 '럭셔리 카'라는 영화라든지 '그것이 알고 싶다', '뉴스', 'CSI', '스포츠 뉴스' 등을 차례로 보았다. 남은 맥주를 홀짝이며 바다 바람을 맞고 잠이 쏟아질 때까지 버티고 버텼다. 최대한 고민하지 않으려고, 이상한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헛헛한 느낌에 시달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오고가는 차 안에서 괜히 일행들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꾸를 하고 툭툭 말을 자르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깔깔 웃다가 입을 꾹 다물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높은 지대를 달리다가 귀가 먹먹해지면 침을 꼴깍 삼키면서 담배를 한 대 물었고 몇 미터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안개 속에서는 타임머신 이야기를 하며 예전 생각을 했다. 머리가 복잡해지거나 멀미가 나면 몸을 웅크리고 잠을 잤다.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한순간 내뱉어버리기도 했다.

  "이제 그만 만나야지 싶은 사람들은 애쓰지 않아도 조금씩 멀어지게 돼요."

쓸데없이 단호하고,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생각하고 나온 말이 아니었고 걸러야 했는데 걸러내지 못한 말이었다. 무서웠다. 마치, 주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나 혼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고 이것이 나의 한계라고 판단할 때마다 지긋지긋했다.

  일을 하고 싶지가 않다. 수다스러운 사람들과도 함께 있고 싶지 않다.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예의있게 이쪽에서 그쪽으로 지금 넘어갈테니 양해해 달라고 말할 줄 아는 이와 종종 만나 차분하게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쳐있다는 것을 알아주고 그가 알아준다는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나를 볼 수 있도록.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일은 내가 점점 더 고약하고 이기적이며 철이 없는 멍청한 여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내 삶에는 오래도록 발전이 없었고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가치 없는 삶에 목숨을 걸 필요가 없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렸던 그림들이 전부 어디로 갔는지, 스케치 한 장 남아있지를 않고, 이렇게 끝도 없이 나는, 파도가 자꾸만 올라오는 모래사장 위에, 그림을 그리려 하고 있는 걸일까? 윤곽선을 잡을 때마다 양양의 바다에서는 가차없이 파도도 그림을 지워버렸다. 내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고 이렇게 더 이상은 못 그리겠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지, 하는 마음이 가득 차 이제 더는 모래 바닥 같은 건 돌아보고 싶지도 않아졌다.



  그런데, 그래도, 밤의 바다는 아름다울텐데 하는 생각이 오래오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어쩔 수 없는 거구나 싶기도 했다.

  쓸쓸하고 또 아름다운 1박 2일의 여행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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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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