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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벌을 받고 받고 받고 또 받고 있다.


  누군가를 위로해 주는 일이 점점 더 억지스럽게 변한다. 진심으로 하는 위로도 아니면서 툭툭 잘도 거짓말을 내뱉는다. 참, 못된 짓거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입이며 행동들이 주체가 안 되는 것이다. 이건 어쩔 수가 없다. 문득 정신차리면 눈에 보이는 발연기를 하고 있다. 그게 부끄럽고 미안하다. 차라리 나 지금 상태 안 좋으니 다음에, 라고 말 했어야 했던 게 아닐까.


  사람들을 잃는 건 순전히 내 탓이다. 그러면서 세상에 대고 비겁하게 변명 따위나 하고 있다.




  진짜 보잘 것 없는 주제에 언제나 넌 참 괜찮은 년이야 소리를 듣고 싶다니. 아, 곤아,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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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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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가?
  몰라, 전부 다. 모든 게 다, 지겨워. 아, 진짜, 정말이지, 지겨워. 지겨워. 지겨워서 미칠 것 같아. 


  거의 언제나 사람들을 좋아했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사람들의 말투나 행동을 관찰하며 저이는 저랬구나라고 판단했었고, 사람들 자체가 좋았고, 사람들과 섞이기를 좋아하는 내가 좋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질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언행에 신경쓰지 않게 되고, 판단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고, 싫어지고, 부대끼기 두려워지고, 그런 내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든 것이 지겨워졌다.

 
  그간 나는 어떻게 살아왔던 걸까. 이토록 지겹게 느껴지는 것들을 관조하며, 웃으며, 어떻게.


라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내내 생각했다. 말을 아낀 것이 아니라, 말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할 말이 없어서 조용해진 나를 발견하는 일은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범이는 마구 뛰논다. 고양이라도 붙들고 말하고 싶어지는 밤이다.

  범아, 누나는, 왜 살아가야 하는지, 이유를 찾아낼 수가 없어. 그런데, 몹시 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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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을 견디는 일이 어려워질 때

퉁명하고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차라리 난 이제 네가 귀찮아, 라고 말하는 편이 나은 것은 아니려나. 때때로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호응을 해 주는 일이, 혹은 따뜻한 조언과 격려를 해주는 일이 더이상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닌 순간이 온다. 눈에 보이는 자신의 발연기가 참 그악스럽게 느껴진다. 지금은 나도 힘들 때라서, 네 얘기를 들어줄 수가 없어, 라고 말할 걸. 괜한 상처를 주고 받지 말고.



2. 익숙한 번호로 전화가 왔을 때

자려고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전화는 받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핸드폰 초기화 이후로 어차피 거의 모든 번호를 잃었기 때문에 누구 번호인지 알 수도 없지만, 가끔은, 이건 안 받을 전화인데 싶을 때가 있다. 옛날 전화기를 뒤져보니, 아, 역시나. 이거 작년에 사귀던 남자 친구의 번호다. 이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라니, 안 받길 참 잘 했구나.



3. 기대했던 일이 벌어지지 않을 때

내가 싫어진다. 기대는 기대일 뿐 오해하지 말자.



4. 이건 뭔가 아니다 싶을 때

지금.



5. 때

정신을 차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내려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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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빠져나가 버릴 것만 같은, 불안과, 상실감.




  다 허물어져 내려, 원상복귀 할 수 없는 오래된 도시가 되어 버린, 몸. 몸의 찌꺼기들이 쌓여 만들어진, 쓰레기산. 그 위에서, 조각난 퍼즐을 맞추려고, 하염없이 울며 불며 움직이는 나. 이것들이 다 내게서 빠져나온 것들일까, 싶겠지. 아마도.







  뭐든지 좋으니까,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잠시 잠깐이라도, 가슴 벅찼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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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오늘의 나는 일기 나부랭이도 쓸 수가 없었다. 지금, 간신히, 블로거로 손가락을 놀린다. 지금 내가 타이핑할 수 있는 건 이런 잡소리뿐이다.





  머릿속에 온통 하나의 생각 밖에 없어서, 어떤 것에도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온 신경이 나 아닌 다른 하나에 가 있다. 그 때문에 웃다 울다 화내다 설레다 행복하다 헷갈렸다 거지 같기를 무한반복하고 있다. 내가 그 동안 어떻게 버티고 어떻게 참고 어떻게 숨겨왔던 건데, 이렇게 무장해제라니 곤란하다. 미치도록 무섭다. 나 미치도록 불안하다. 그런데 미치도록 행복하다.


  토할 것 같다. 달뜬 마음, 감당할 수 없는 이른 아침 공기의 무게, 어떤 식으로도 결정내릴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 그런데도 포기가 안 된다는 것, 욕심이 난다는 것, 욕심내면 안 된다는 것. 무거운 것으로 오래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스멀스멀 공기 중으로 기어나간다. 그런데 왜, 희망이라는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가. 판도라의 마음을 알겠다. 인간의 마음은 이토록 간사하고 나약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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