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다닐 때 내가 할 수 없는 범주의 과제가 나오면 선택은 쉬웠다. 빨리 포기하면 그만이었고, 학점에도 별로 신경쓰지 않았었다.

 

  회사는 다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나 혼자 할 수도 없거니와 해서도 안 되는 일인데 위아래로 받쳐주는 이들이 없으니 내가 포기하면 회사의 신뢰가 훅 떨어진다. 꾸역꾸역 주말에 나와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제대로 한 일은 없고 미친듯이 한숨만 쉬고 있다. 정말 어디에서부터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하지만 이 일은 기간 한정이고, 일을 해내지 못 하면 이 회사는 (나와 함께) 또 주춤하다 위험에 빠질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친구들은 너 하나 빠진다고 회사 안 돌아가진 않아, 라고 말하지만 이 세상에는 구성원이 하나라도 빠지면 진짜 안 돌아가는 회사도 있다. 직원이 천명인 회사랑 너댓명인 회사를 비교하다니... 작은 회사에 다녀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 상황을 절대 이해 못 한다. 조금만 힘들어해도 그런 불합리한 회사 나와버려, 라고 쉽게 말한다. 불합리한 조건은 개선해나가는 것이 맞겠으나, 조건이 별로라고 회사를 다 때려치우는 게 맞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불합리함을 넘어서 불가능에 가까운 업무를 가능하게 만들어내는 초인적인 임무를 던져주고 누구도, 그 누구도, 그 어느 누구도 현실적인 도움을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님도 동료들도. 미안해하는 마음 같은 건 업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데 모두가 미안하다면서 이 상황에서 발을 뺀다.

 

  앉아서 회의를 하고 상사의 업무 지시를 받을 때마다 정해진 답에 '네'라고 대답하기를 회사가 바라고 있다는 걸 느낀다. 누군가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기 위해 일하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 그렇게 발전 없이 하루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이상한 것은, 회사는 개개인의 열정이 그들 각자의 것이 아닌 회사의 것이기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단 한 번도 열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 한 사람들은 도구처럼 쓰이고 닳아간다. 경력자일수록 신입다운 패기와 열정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누군가에 의해 다 소진됐으니 남아있을 턱이 없지.

 

 


  도대체 나는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 걸까. 5시간째 회사에 앉아 있는데 일은 손톱만큼도 진전되지 않았다. 다른 업무를 빼줄 테니 이 일에 집중하라지만 실제로 다른 업무가 100% 사라진 것도 아닌데다가 이 일은 개인 한 명이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니까 제발 좀 누가 도와줬으면 좋겠다. 뭘 도와달라고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는 이 상황에 하나에서 열까지 나한테 다 알아서 해보라니, 이것도 큰 경험이 될 거라니... 단어 선택이 틀렸다. 이건 큰 '경험'이 아니라 큰 '재난'이다. 재난은 안 당하는 편이 경험하는 것보다 나은 것 아니려나.

 

 


  아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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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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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의 열정을 나 아닌 다른 무엇에 쏟아야한다고 하세요? 그건 당신 꿈이지 내 꿈도 아닌데 말이예요. 꿈 없이 산다고 당신 꿈의 언덕에 올라 감지덕지 더 높게 흙을 쌓아야 하나요. 왜냐하면, 내 인생은 가난하기 때문에?


나도 내 열정으로 당신들 말고 나를 채우고 싶어. 당신들은 너무 삶의 목표와 할당치를 강요해. 그만큼 돌려줄 것도 아니면서.

웃고 있다고 그게
진짜 웃는 건 아니라고
이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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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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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고 싶은데 안 가고 싶다.

지금 일하고 있지만 집에 가도 반드시 일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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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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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는 같은 속도로 자전하고 있을 거라는 건 착각이다. 지구의 자전속도와 원자시계의 차이, 이 1초를 윤초라고 한다. 국제협정에 따라 유지되고 있는 협정세계시, 그리고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통과하는 자오선 기준의 세계시가 차이가 나면 플러스 마이너스 0.9초 이내에서 관리하기 위해 조정하는 것이다. 자전이 늦어지면 협정세계시가 빨라져서 23시 59분 59초 다음 1초를 더하고, 반대로 지구 자전이 빨라져서 협정세계시가 늦어지면 1초를 뺀다. 1972년 처음 도입되었고 그게 오늘 전 세계에 적용되었다.  

 

 

  한국 시간 오전 9시를 기점으로 지구는 1초의 시간을 벌었다. 시간을 늘리거나 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인간이 시간을 조정할 수 있을 거라고(심지어 이미 어디에선가, 누군가에 의해 조정되고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라는 존재는 지금까지 늘 시간에 종속되어 그것이 퍽 억울하거나 놀라운 일도 아니라는 듯 살아왔을 뿐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365일이 지나면 1살을 더 먹고 그저 그런대로 나이들어 가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가 사용하고 있는 이 1초가 어떤가에 따라 아주 먼 미래에는 엄청난 일이 생길수도 있겠구나라는 그런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몸에 소름이 오소소소소소소소소....

 

 

  1초는 아주 아주 짦은 순간일 수 있다. 그러나 1초는 어떤 존재에게는 영겁보다 긴 시간일 수도 있다. 단순히 길을 걷다가 개미집을 밟아 내가 그랬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엄청난 학살(응????)이 이뤄진 적이 있다면, 내게는 한두 걸음 내딛는 데 사용했던 그 불과 1초 사이에 개미들의 삶은 초토화될 수도 있다는 뭐 그런 거.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오늘 지구는 1초의 시간을 벌었다. 우리는 그 1초에 대해서 좀 진지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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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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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한다. 반드시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행복한 코스프레도 약발이 떨어져간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는 죽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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