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중증의 것'에 해당되는 글 92건


  2002년 시작이 얼마 되지 않아, 고3을 눈앞에 두고, 마리 이야기와 처음 만났어. 곧 모든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믿으려고 애쓰며, 남자 친구도 친구도 나 스스로도 잃고, 가장 추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지. 그런데 다시 겨울이 왔을 때 나는 잃었던 것들을 하나도 되찾지 못 했고 겨울은 여전히 추웠어. 오직 오만했던 내 마음에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 그 뿐이었던가, 그래. 그래도 그 오만이 나름 청춘을 대변해주고 있었는데 말이지.


  변화의 과정 속에는 늘 상실이 존재하나. 그렇다면 가슴아픈 변화야, 라고 말하며 살짝 고객숙인다.


  그래도, 나 아직 청춘이지?

  했더니, 네가 말했다.

  넌 아직 청춘이야. 게다가 아직 오만하거든
 
  다행이다, 다행이야.



  아이쿠, 어쨌든 마리 이야기를 다시 봤다. 변화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변화하지 않았다고 믿고 싶은 변화한 나를 발견했다. 쓸쓸하지만 또 당연한 변화이고. 이병헌 목소리가 그랬지.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것 같은데 말이야."

  그래, 뭐 잊지 않겠다던 것만이라도 기억하고 있다면 아직 괜찮다. 이젠 슬슬 어른이 돼야 할 텐데. 깨진 구슬을 백번 바라봐도 마리를 다시 볼 수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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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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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들을 붙잡고 서서 오랫동안 나 외로워요,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더욱 깊은 독방으로 가둘 염려가 되는 일이다. 물론 외롭다는 말을 온전하게 외롭다, 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용기있는 일이겠지만, 지나치면 역시 독이 되는 법. 질리게 하지는 말아야 하는데.  
  그래도 가끔은 억울하다. 자주, 외로움을 호소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곤 했다. 요즘 같을 때에는 이렇게 투정을 부려도 좀 봐주면 안 되나 싶을 정도로. 정말이지 좀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매달리고 질질 짜고 있을 때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거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준다거나 꽉 한 번 안아 준다거나 하는 것을 바란다는 말이다. 그래, 바란다, 어쩔래.
  지금은 더 징징대고 마구 발악하고 싶을 때니까 한 마디 더 하자면, 그래 나 애정결핍이면 좀 안 돼? 나도 좀 이해받고 싶다고 말하면 큰 잘못이야?


  역시, 쓸데없는 짓이다. 외로워요, 라고 외쳐봤자 고독은 내 안에 애초에 존재하는 감정, 마음이 아파도 한 켠에 품고 살아야 하는 나의 것이기 때문에. 

  흥, 외롭다 외로워. 징징. 투덜투덜. 엉엉. 쳇!



2. 사실은 오늘 과사에 죽치고 앉아 있을 때 영미 언니가 말했다.
  "얘는 학교에 오면 밥은 먹을 수 있는 아이야. 다만 집에 쌀이 없다는 게 문제지."
  음, 이 말은 소희로부터 무슨 구호물품 받은 것처럼 쌀을 받은 내게, 복사를 부탁하셨던 민경언니가 뭔가 사주려고 하자, 영미 언니가 재미있으라고 했던 말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게 묘하게 맞는 말이라고 뜨끔했다는 것이다. 하도 여기저기서 얻어먹고 다니던 중이었던지라.
  하하, 슬프구나. 결국 엄마 통장에서 돈을 뽑아 또 쓸데없는 짓에 써버리고 장을 보지도 못 했다. 그 와중에 예영님네 놀러가서 치킨에 맥주까지 마시고 왔고 영님은 내게 소희마냥 구호물품을 주셨는데 쌀과 자몽과 치즈가 그것이다. 하하하.

  절망적이다, 이런 삶은. 사소한 문제로 비참한 기분이 들고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잘 살아서 민폐 안 끼치고 살고 싶을 뿐.



3.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게 외로운 사람이었던가. 외롭다고 우기고 싶다면 저 혼자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다니느라 느긋하게 서서 얼굴 보고 웃어본 적 없기 때문이겠지.
  요즘들어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과 만나면 말은 서투르고 더듬거리고 시선은 똑바로 눈을 바라보지 못 한다. 한 달 안 만났을 뿐인데도 마치 10년 소식을 통 모르고 살아온 친구를 만난 동창회 자리에서처럼 어색하고 두근거리고.



4. 종종 문득 정신 차려보면 조금씩 시간이 사라져있다. 기면증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시간 이동을 한 사람처럼 시간이 뭉텅 뭉텅 띄엄 띄엄 그렇게 존재한다. 전처럼 수업 날짜가 하루 지나가 있으면 몹시 곤란한 일이다. 또 그러면 병원행을 결심.



5. 또랑이에게 말을 걸었는데 얘가 대답을 안 한다. 가끔 벽 보고 얘기를 하면 대답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른 것이, 일부러 말을 안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돌아와보니 놀랍게도 키가 조금 자라나 있다. 햇빛 비치고 바람 부는 창틀에 올려 놓고 나갔는데 마침 갑자기 비도 내리고 해도 또랑이는 고새 컸다! 다만 저 혼자 두고 너무 늦은 것 아니냐고 토라진 것 같다. 뭐, 꼭, 그런 것 같다는 말이다.
  참고로 내가 사물과 무슨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검지 손가락을 혼자 뻗고 보이지도 않는 이티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 뿐이지. 말은 통하지 않아도 또랑이가 향기나 색깔이나 잎의 상태를 보여주면 나는 해석하고자 노력하면 된다. 그게 첫걸음이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어떤 존재들 사이에도 완벽한 의사소통의 방법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다만, 거리를 좁혀가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내가 물을 주고 빛쪽으로 놓아 주고 바람을 느끼게 해 주면 또랑이는 키가 크고 향기를 내고 가끔 허브티도 해먹으라고 잎도 주고 그럴 거야, 생각하니 기쁘다, 뭐! 소통이 되는 순간마다 존재들은 기쁨을 나눈다. 앗싸라비야 오예!



6.  다시 수면 시간 늦춰지고 있음. 이런 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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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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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는 깨어서 불안에 떤다.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조차 잊었다. 게다가 잃을 것도 하나 없는 빈털터리라는 사실도 안다.
  새벽이 무섭다. 낮에 꾸는 꿈도.
 
  이제 어디로 물러서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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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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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오늘 만난 친구들에게처럼 힘들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맘 놓고 어린애처럼 마구, 칭얼거리고 싶었다는 말이다. 이럴 때 선생님 같은, 오빠 같은 애인이라도 있었다면, 태어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집에 돌아와있다. 어제 오늘 3만원이나 썼는데 그게 큰 돈은 아니겠지만, 지금 나에게는 너무나 사치스러운 생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집에 들어서자마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울어서 뭐 할거냐는 꾸중을 누군가 하는 것 같아 왈칵 쏟아내지는 못 했다.

  울고 싶다! 엉엉, 대성통곡 하고 싶다. 내일 다시 힘겨워지더라도 힘들어 죽겠다고 발악해보고 싶다.

  그러나 어쩐단 말인가. 나 스스로에게 힘들다고 하기에 지금 나는 너무 쇠약해진 상태이며 주위에는 다들 힘든 이들 투성이다. 가끔은 혼자서 해결해야 할 일에 대해 난 정말 못해먹겠다고 막무가네로 떼를 쓸 수 있다면.

  글도 써지지 않고, 공부도 되질 않고, 일자리는 여전히 없다. 그리고 나는 약해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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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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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를 계속 하려면, 경제적 여유가 많아야한다는 말을 돌려 말하는 교수님 말씀에 입학도 하기 전부터 나는 등록금을 걱정한다.

  취직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고, 돈을 벌지 못 하면 공부를 할 수 없는데, 취직해서 돈을 벌면 정작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진다. 주경야독하는 사람들처럼 부지런하지도, 집념이 강하지도 않은 나로서는 그저 통탄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게으른게 죄다. 그리고, 무엇보다, 느리게 사는 것을 사랑하는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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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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