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슨 일인가 닥쳤을 때, 스스로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과 별개로, 다만 대책없는 위로지만 그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무엇인 현명한 처사인지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나 무서움에 직면하면 또 그건 그것대로 나를 불안으로 몰고 가기에 그 시간을 잠시 함께 채워줄 사람이 필요해진다. 이럴 때에는 똑부러지게 한 마디 해주는 지인도 좋지만 일단은 같이 농담을 나눠주고 허허실실 웃는 이들과 만나고 싶어진다.

  그래서 오늘, 그런 지인을 둘이나 만났다. 폼 잡고 고맙다는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진짜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 주고 얘기를 들어주었던 일이 오래 기억날 것 같다. 내가 정작, 그러지 않았을 때에 아무 말 하지 않았던 어른스런 처사에도 그렇고.

  악몽같던 옛 기억이 떠올라 혹시 또 우려한 일이 발생하는 것은 아닌가, 벽에 머리를 찧으며 덜덜 떨었던 새벽녘의 격한 감정들도 다소 수그러들었고 안심할 수는 없으나 조금 느긋하게 여유를 가지고 잠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전에 있었던 일은 말하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고도 이해받은 것 같고, 이해받지 못했어도 상관없이, 가볍게 한숨쉬어도 보고. 뭐, 내 지난 실수를 얘기하면 어떻고 하지 않으면 어떤가,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사람인지라, 누구를 좋아하고 의지하고 혹은 좋은 사람이 되거나 의지받는다는 것이 매번 그 대상도 경우도 달라서 오늘 이런 사람이 좋다고 내일 이 사람이 여전히 고마워 미칠 것은 아니겠으나,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애정으로 (혹은 애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받은 날들엔 기쁘다. 누가 내게 고백했을 때보다도 내 존재를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속이 너무 메스껍구나. 그리고 무척 피곤하고 졸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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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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