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같은 건 아무려나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세월호 사건으로 날짜가 미뤄진 그린 플러그드 덕분에 생일 전날과 당일날을 서울에서, 지인들과 보낼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 케잌이나 파티 같은 건 정말 싫지만, 그래도 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니까.

 

 

 

 

 

 

 

 

 

 

 

  그건 그렇고,

 

 

 

  어제 내가 들었던 말들 중에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좋아했던 선배의 이야기였다. 내게는 호주 체류 당시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결혼 소식에서 멈춰 있는 그의 소식이, 친구들의 입에서 순식간에 터져나왔다. 궁금했던 일이긴 했어도 내가 묻기도 전에 친구들의 결혼 이야기, 아이 이야기를 듣다가 준비없이 그 이름을 듣게 되니 갑자기 몸이 얼었다. 그가 친구에게 태어난 아기의 사진을 계속 보낸다는 이야기도, 그 이름과 안부를 듣는 것도 이제는 내 감정을 크게 건드릴 리가 없는 것인데, 대체 왜 이러는 걸까를 한참 고민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고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더 이상 선배와 연락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 한 때는 참 가깝고 다정한 선후배였는데 내가 그를 4년 넘게 좋아했던 걸 고백해버렸다는 이유로, 일주일의 불장난으로, 누구도 내게 공지해주지 않았던 선배의 결혼식이 지나 지금까지 5년 이상을 연락을 끊은 채 지내왔기 때문에, 기회를 잃었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만나기 힘든 좋은 친구를 잃어버리기 전에, 나는 호주로 도망가지 않았어야 했고, 쿨하지 못 했더라도 기다리지 말고 친구들에게 소식을 먼저 물었어야 했다.

 

 

 

  이제 나의 삶과 그의 삶은 아주 긴 직선의 끝과 끝을 향하고 있고,잘 지내느냐고 사는 것은 어떠냐고 안부를 물을 수도 없다. 어쩌면 선배를 만나 제가 그 때 왜 그랬을까요 하고 웃고 떠들수는 있겠지만 그 자리에는 예전의 나도 없고, 그도 없을 것이다.

 

 

 

  하필 내가 내 생일에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그 애들의 결혼생활과 엄마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내가 거부하거나 도망갈 수 없는 타이밍에, 내 사연을 다 아는 친구들조차 어쩌다보니 선배의 이야기를 해버려야 했던 그 순간에...

 

 

 

  말을 돌리지도 못 하고 적극적으로 끼어들수도 없었던 대화들이 오고 갔다. 나는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몰랐고 아빠가 되었는 줄도 몰랐고 그가 사는 곳이 어디인지도 몰랐으며 무엇보다도 그가 나 빼고 다른 사람들과는 지속적으로 안부를 물으며 지낼 수도 있었겠구나 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무척 힘이 들었다.

 

 

 

  함께 속해 있었던 어떤 사회에서 방출되어 버렸다는 것, 그리고 다시는 그 곳에 적을 둘 수 없으리라는 것.

 

 

 

  이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내가 단지 한 사람을 잃었다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이제 그와 연결된 모든 관계들로부터도 멀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가 여전히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내가 그들과 새롭게 다시 맺은 관계일 뿐 이전에 우리가 함께 공유했던 테두리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다시는 복구되지 않는 데이터베이스처럼 많은 것들을 제목도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 가물가물한 옛 일로 추억하게 되겠지. 그리고 기억은 쉽게 뒤틀리고 변형되어 언젠가는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될 것이다. 그 때 내가 슬펐었는지 기뻤었는지 조차도 내가 기억하고 싶은대로 바뀌어 있을 테니까.

 

 

 

 

 

  어쨌든, 그래도,

 

 

  

 

 

  어제 내가 들었던 말들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고은아, 였다. 이름이라는 것이 불리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따뜻한 것이었나 싶었을 정도다. 무슨 이야기를 시작할 때 고은아, 고은씨 하면서 운을 떼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면, 내가 의미 있는 사람이 된 것만 같다. 때로는 친숙한 애칭이나 별명으로 불러주어도 참 좋다.

 

 

 

 

  더 이상 나를 불러주지 않을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어, 지금은 나를 불러준 이들에게 집중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려고 한다. 그것이 유일한 자구책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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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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