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부산, 그리고 나는 어쩐지 이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내 연봉은 2천, 그나마도 아직 정직원이 아니다. 인턴기간이니까. 이번주가 4주차, 일은 슬슬 몸에 익어 가고 있는 중이다. 3년간 한국에서의 경력이 없는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사실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무작정 여기 들어온 건 아니다. 한 시간 반의 긴 면접 시간 동안, 불안하면서도 재미있을 것만 같은, 내가 더 나이 먹기 전에 함께 시작해도 좋을 것 같은 신생회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연봉을 적게 부른 건 내 탓도 있다. 하지만 연봉을 적게 불렀으니 내가 이렇게 덜컥 부산에서 일까지 하게 됐겠지. 사실 내  마지막 연봉이(연봉이라고 부를 만큼 오래 일한 곳이 없지만서도) 2100정도였던 걸 감안해보면, 조금 슬픈 일이긴 하지만, 최대한 일을 즐겁게 하면 된다는 쪽으로 생각하며 버티는 중이다.

 

 

  호주로 다시 돌아가 정착해서 사는 걸 심각하게 고려하고 준비까지 조금씩 해왔지만 부모님과의 마찰을 나 스스로 견딜 수가 없어 마지막의 마지막 타협점으로 선택한 구직이다. 어차피 마지막이라면은, 해외가 안 된다면은, 적어도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연고지가 아닌 곳에서 그렇게 시작해보고 싶었다. 나는 나의 서른이 절대 늦지 않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므로.

 

 

  하지만 시시때때로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과 가족들과 혹 그 비스무레한 테두리 안의 사람들로부터 나는 학대받는다. 학대라고 표현해서 미안... 하지도 않다. 진심으로 학대라고 생각하니까. 나는 나의 용기를 격려받는 쪽이 좋다. 30년동안 '너는 대체 왜'라는 말과 '멍청하다'는 말을 수시로 듣고 살았는데 지금 내 꼴을 보니 그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니, 내게는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북돋는 말들을 취하는 편이 더 행복하다는 말이다.

 

 

  내가 부산에 내려오기로 결정하고 내려와서 가장 크게 좋아진 점은, 이 거지같이 외로운 시간들을 버티면서 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못되게 굴었던가, 별 것도 아닌 일에 왜 그토록 신경질적인 말을, 가시돋친 언행을 서슴지 않았나를 끝없이 반성한다는 점이다. 되돌아보니 어쨌거나 그들은 한 때 나를 사랑해준 사람들이었는데, 나도 사랑했던 사람들인데 다정했던 사람들끼리 물어뜯느라 우리는 청춘을 조금은 헛되이 쓴 것이 아닌가 싶다.

 

 

  항상 좋을 수는 없지만, 나는 왜 그토록 항상 안 좋으려고 발악을 했을까? 죽는 게 삶의 목표인 사람처럼, 그러니 최대한 우울하고 아픈 삶을 살아야하는 것처럼, 남을 헐뜯어서 나는 배로 헐뜯겨야 했던 날들이 너무나 많았었다. 나락으로 빠지는 것만이, 그래서 기어코 비명지르도록 아픔을 느껴야만 존재한다고 믿었던 날들도 그러하다.

 

 

  하지만 나는 정말 밝게 살고 싶다. 내 여정에 언제나 좋은 날만 있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아는데

 

  - 어 째 서 이 토 록 좋 은 날 들 을 허 비 하 며 살 아 야 한 단 말 야

 

 

 

 

  아직도 남아 있는 나의 사람들과 내가 아프지 않은 날들에 감사하며 강건히 이 세상을 버티고 살아나가는 것, 그것이 나의 꿈이고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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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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