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하기가 참 힘든 일이 아니려나. 어떤 것을 놓고 그것이 나를 열망하게 하는가, 라는 질문에는 쉽게 대답할 수 있어도 정작 내가 무엇을 열망하게 만드는 것을 만들 수 있다, 라고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추구하는 것에 아주 근접하지 않으면 스스로 더 다져지기 전까지는 창조를 미루거나 포기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한계를 수긍하고 대신 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일단 해보자고 한다. 두 가지 자세 중에 무엇이 더 옳은가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우문이다. 이것은 단지 선택의 문제다. 선택에 따른 뒷담화, 내지는 편견, 비판에 대해서는 속으로 삭히든 싸우든 타협하든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러니까 나로 말하자면, 후자에 가깝다. 재능이 많다거나 내실이 탄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을 줄곧 해봤다. 다 집어치우고 시집이나 가야할 지, 안 되는 일 가지고 헛꿈이나 꾸며 어쨌거나 열나게 해보긴 해야 할 지 수차례 생각(만) 해봤다.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삶이 어느 곳을 향해 가더라도 마음 속에 소박한 꿈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살 맛이 날 것 같아, 누군가 비웃어도 상관없이, 처음의 마음을 놓지 않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대단한 경외심을 일으킬 정도의 일을 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몫이다. 난 그저, 내 주변인들의 가슴을, 마음을, 한 순간이라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새끼를 낳고 싶다. 내가 헤르만 헤세를 좋아한다고 그런 노작가가 될 수 있을 리도 없고, 전경린을 좋아한다고 해서 어느 대학 강의에서 한 시대를 대표하는 부류의 문학 작가였다는 평을 듣지도 못 할 텐데. 그렇다고 어린 나이에 등단해서 주목받기엔 그다지 재능이 없어 이미 나이를 먹어가고 있기도 하고, 다방면에 소질이 있어 여기 저기 러브콜을 받게 될 리도 없다.

  이것은 자학이 아니다. 꿈이 소박하다고 해서 누가 비웃는다면 엿이나 먹으라고 하지 뭐. 우리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즐겨보며 아이고 하고 한탄하는 가족 드라마 같은 아주 아주 소소한 얘기들과 함께 살고 싶다.

  문학 하고 예술 한다는 친구들 사이에서 자꾸 자꾸 헛바람만 들어서 그것이 나를 참으로 좀먹었던 날들이 있다. 지금도 조금은 그렇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이야기들은 참으로 자잘하여 누가 들어도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누군가를 피식 웃게 만드는 이야기들이었지. 왜 잊고 있었나 모르겠다.

  이런 걸 하는 사람이 있으면 또 저런 걸 하는 사람도 있어야 이 놈의 세상이 기우뚱 기우뚱 하며 균형 맞춰지는 것이 아닐까. 어렵고 원대하고 고차원적인 것들은 그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잘 해주었으면 좋겠다. 나도 보고 듣고 읽고 만지면서 기뻐할 수 있도록.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손대지 않는 작은 것들을 내 몫으로 남겨 두고서, 더 큰 욕심에 휘둘리지 말고, 기꺼이 감사하며 지켜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 끝은 위에서 냈어야 하는데 또 이 따위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어울리지도 않는 비싼 옷 따위로 치장하려던 일말의 마음들도 차분히 내려 놔야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제 이런 문제 가지고 너랑 싸우는 일이 매우 지겹다는 말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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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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