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갑자기 새로운 약속이 생겼다. 신바람 이작가님께서 냉면이 급 먹고 싶다며 홍대로 호출, 어쩐 일인지 오후에 집에 놀러온 친구와 냉면 먹고 싶다는 말을 했던 나는 콜, 뭐 이런 상황. 속이 싸해지는 비냉에 만두를 뚝딱 해치우고 엄청 길을 돌아 상수역 근처 상수동 카페에 안착. 커피를 마시면서 이러쿵 저러쿵 수다. 그리고 집에 어떻게 갈까 고민하다가 고맙게도 집까지 이작가님과 동행. 그리고 지금은 집이다.




  걸어오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도중에도 종종 한 가지 생각이 고개를 쳐들어 나를 위협했다. 늦은 밤 이 길을 함께 걸었던 몇몇 남자들의 팔과 다리가 흐느적거리며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어떤, 단, 한 사람만은 한 자리에 서서 오지도 가지도 않았다. 그가 하나의 지표가 되어 거기 서 있는 동안 나는 계속 걸으며 말을 멈추지 않았고 그에게 가까워졌다가 곧 그로부터 멀어졌다.

  남자는 곳곳에 서 있었다. 버스정류장 앞에, 편의점 앞에, 집 앞에, 현관에, 침대 위에, 곳곳에. 그러나 내가 아는 골목들과 공간들 속에서 수없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보행을 가록막기만 할 뿐, 오래 한 자리에 놓고 쓰지 않는 잡다한 물건들처럼 실상 내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버리고 싶은데 도통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냥 사람 형상을 한 흉물스러운 기둥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이 아니지만, 오늘 같은 날은, 집으로 돌아가는 이유를, 그 때문이라고 하고 싶다. 이 집과 이 거리에는 쓸모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 내가 서 있을 자리가 없어서라고. 여기에 더 오래 있게 된다면, 결국은 내가 서 있을 공간이 점차 사라져서 그것들을 피할 수조차 없어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그렇다고, 이 나쁜 자식아.










  핑곗거리가 갈 수록 더 많아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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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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