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

406호의 입장 2010. 5. 21. 19:55

  곧, 돌아가, 나.

  여기서 참 많은 일이 있었지.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고, 창문 너머는 폐허였다가 신축 빌라가 생겨났고, 몇 번인가 애인이 생겼다가 없어졌다가, 울었다가 또 웃고는 했었어. 딱 이 시기가 되면, 저 멀리 건물들 너머로 불꽃놀이 축제 때문에 불꽃의 끄트머리가 샐죽 고개를 내밀었다 사라지기도 했지. 고개를 창문 밖으로 쑥 내밀고 앞집 남자를 관찰한 적도 있었어. 좋아하는 사람이 놀러오기도 했었지.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기도 하고,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 오면서 맥주를 한 잔 홀짝이기도 했어. 아파서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었는데. 

  내가 집으로 돌아간다고 고백했더니 이 말을 들은 지인들마다 족족 서운하다고 했어. 나라고 서운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일이 슬픈 일은 아니라고 했어. 그게 내 최선의 대답이었으니까. 종종 게을렀지만, 난 여기서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아왔으니까. 괜찮진 않았지만, 나쁠 것도 없잖아. 

  학창시절엔, 서울 올라가 혼자 살게 되는 게 내 인생 최고의 목표였는데 생각할수록 피식 웃음이 나. 어쩌면 인생의 목표를 하나쯤 달성해봤다는 것 만으로도 즐거운 거 아닐까 해서. 여기 와서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났고, 연애도 많이 했고, 오래 맘 끓이며 혼자 좋아했던 사람한테 고백도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오롯한 내 공간을 꽤 오래 지속해보기도 했으니까, 그리 나빴던 것만은 아니야. 아니, 사실은, 진짜 좋았어. 쉰살이 되어서 내 20대를 기억할 때마다, 분명 즐거웠던 시간으로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해.

  다행이다. 후회하지 않고 떠날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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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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