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이가 자꾸만 사고를 친다. 나는 자꾸만 범이를 혼낸다. 동물과 동거하면서, 깊이 깊이 사랑은 못 주고 자꾸만 혼내고 때리고 소리를 지르는 나를 보면서 생각한다. 나는 진짜 사랑받고 사랑을 할 자격이 있는 년인가 하고.



  오늘은 범의 발톱에 왼쪽 엄지손톱 근처의 손등에 2센티 정도 할퀸 자국이 남았다. 손 씻을 때마다 쓰라리다. 물론 범이 녀석도 혼이 난 상태라 우리는 늘 그렇듯이 서로에게 삐져 있었다. 그러나, 화해의 손길은 언제나 범 녀석이 먼저다. 야옹 야옹 거리고 얼굴을 내 다리에 부비면서 다가온다. 그러면 이제 마음도 쓰라리다. 너처럼 애교 많은 고양이가 왜 나에게 와서 마음껏 말썽도 못 부리고 힘들게 사는 거니, 하면서.







  미안한 마음에 간식도 주고 목욕도 시키고(과연 좋아할지는 의문이지만) 했지만 이러고 나서 이 녀석이 또 대책없이 말썽 부려 놓으면 나는 소리를 지르게 되겠지. 나 하나도 간수 못 하는 주제에 애를 키우는 것이 가당키나 한 짓인가 싶다. 
















  지금은 마트에서 사온 보드카를 홀짝이고 있다. 취했다. 동거녀는 내일 온다고 하고 내 인생은 대책이 없는 것 같고 어떤 일에도 구미가 당기지 않으니 술이나 마실 수밖에.



  하지만, 술을 홀짝이는 일도 점점 재미없어지니 큰일이다. 큰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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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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