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영화들과 노래들과 티비 오락 프로그램과 술자리와 쇼핑을 반복하며 시간을 보냈다.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비뚤어져보이고 어쩐지 잘못되었다라는 느낌에 시달리며 밤에는 악몽을 꾸거나 혹은 진탕 마신 술기운에 취해서 쓰러지고는 했다.
종종 가깝게 지내던 지인들을 만나는 것에 환멸을 느끼기도 했다.
나이든 아버지와 별 볼 일 없는 나를 번갈아가며 떠올리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고 새로운 직장을 얻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은 실행하고 싶지가 않았다.
글을 쓰고 싶었고 입밖으로 튀어나오는 말도 죄다 글 쓰고 싶다는 말 뿐이었으면서도 과연 내 마음이 그러한가를 확인한 적이 없다. 확인이란 두려운 일이다. 확인 이후에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결론에 도달하면 나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나는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큰 충격을 받은 것도 아닌데 왜 상태가 계속 이 모양인 거지? 머리가 아프다.
이 시간에 내 집이 아닌 곳에 있다는 건 좀 웃기는 일일까?
목요일에 집에 내려간다. 집에서 호출이 왔기 때문에. 다음주 화, 수, 목요일에는 부산에 간다. 부산국제영화제 참가작을 몇 편 볼 예정이다.
어디든 떠나지 않으면 돌아버릴거야.
이렇게 살기 싫어.
다시는.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 해당되는 글 39건
- 2007.10.03 백수가 되기 전날부터 지금까지
- 2007.08.31 오랜만에 긴 밤
- 2007.08.03 폭발
- 2007.07.29 이번 펜타포트는 못 갔지만
- 2007.05.11 후레쉬 100과의 첫 대면을 기다린다
회사에서 야근을 하지 않으니 저녁 시간이 길어졌고 나는 친구를 만나러 학교 앞까지 갈 수 있었다. 두 시간 정도 함께 술을 마시고 이야기도 마시고 나는 이러한 시간의 즐거움을 너무 오랜만에 느낀 터라 배터지고 먹고 또 먹었다.
친구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기쁜 저녁. 마음을 곱게 쓰면 복이 온다. 집에 가려다가 연대 세미나를 마치고 뒷풀이를 하러 가는 '아는' 일행을 만났다. 아는 분들이 계셔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기쁘기도 하고 어쩐지 거리감도 느껴지면서 묘한 감정 상태가 되었다.
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조금씩 멀어지는 느낌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멀다'라는 말이 주는 강렬한 감정에 나가떨어지는 기분까지 되어버린 것은 난생 처음이다. 이제 내가 그들과 '무엇을' '함께 할 수 없다'라는 것은 몹시 슬픈 일이었다. 그 사람들과 같은 것을 공유하기에 우리의 거리는 멀었고 좁혀지지도 않았다. 한 때 같은 것을 공유했던 이들이 다르게 살아가는 것은 지독하게 사랑했던 애인과 헤어지는 것처럼 힘들다.
이제 어느 교차점에서 만나게 될런지 의문을 가져보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이 반드시 같은 길을 걸어야한다는 강박은 사라졌다. 다르게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조용히 서로의 삶을 바라보고 가끔 미소짓는 편이 낫다.
우리들은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충실히 할 것들을 이행하면서 꿈꾸었던 일들을 실패하고 혹은 성공하는 과정은 우리를 조금씩 더 어른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좀더 관대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고 싶다. 따뜻한 시선으로 멀리서 누군가를 바라보고 웃어주면서.
기뻤다. 마음이 아주 따뜻해져서 전화 목소리도 경쾌해졌다. 당장은 조금 힘들게 살고 있더라도 우리들이 언젠가 만나게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면 자꾸만 허허허 웃음이 났다.
친구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기쁜 저녁. 마음을 곱게 쓰면 복이 온다. 집에 가려다가 연대 세미나를 마치고 뒷풀이를 하러 가는 '아는' 일행을 만났다. 아는 분들이 계셔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기쁘기도 하고 어쩐지 거리감도 느껴지면서 묘한 감정 상태가 되었다.
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조금씩 멀어지는 느낌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멀다'라는 말이 주는 강렬한 감정에 나가떨어지는 기분까지 되어버린 것은 난생 처음이다. 이제 내가 그들과 '무엇을' '함께 할 수 없다'라는 것은 몹시 슬픈 일이었다. 그 사람들과 같은 것을 공유하기에 우리의 거리는 멀었고 좁혀지지도 않았다. 한 때 같은 것을 공유했던 이들이 다르게 살아가는 것은 지독하게 사랑했던 애인과 헤어지는 것처럼 힘들다.
이제 어느 교차점에서 만나게 될런지 의문을 가져보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이 반드시 같은 길을 걸어야한다는 강박은 사라졌다. 다르게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조용히 서로의 삶을 바라보고 가끔 미소짓는 편이 낫다.
우리들은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충실히 할 것들을 이행하면서 꿈꾸었던 일들을 실패하고 혹은 성공하는 과정은 우리를 조금씩 더 어른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좀더 관대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고 싶다. 따뜻한 시선으로 멀리서 누군가를 바라보고 웃어주면서.
기뻤다. 마음이 아주 따뜻해져서 전화 목소리도 경쾌해졌다. 당장은 조금 힘들게 살고 있더라도 우리들이 언젠가 만나게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면 자꾸만 허허허 웃음이 났다.
했던 적이 있다. 여러번. 몇 년에 한번씩, 불규칙한 주기로 나를 찾아오는 폭발의 시기가 있다. 폭발 이후 기억은 거의 사라지므로 지인들의 기억에 의존해야 했다. 지인들은 말을 아꼈다. 나도 많이 묻지 않았다. 무서웠다. 그 무서움을 무릎쓰고 단 한 번, 물었던 적이 있다.
"내가 대체 뭘 어쨌던 거야?"
술자리였다. 동호회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첫사랑이었던 남자와 함께 동호회를 이끌던 초창기 멤버였다. 그는 결혼하고도 꽤 오래 동호회 활동을 했다. 우리는 종종 마주쳤다. 그 날도 우리는 만났다. 멀찍이 떨어져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그 날 개처럼 취한 상태에서 하필이면 폭발의 시기를 맞았다. 우리가 자주 가던 왼손에서 밤새 술을 마시며 사장님과 과일도 깎아 먹고 그랬던 것 같다. 덕분에 과도가 하필 그 자리에 있었던가 보다. 이쁘게 과일을 깎는 걸 자랑삼아 한참을 과도를 들고 있었던 나는 그걸 든 채로 술에 취해 있었다.
예쁘게 줄지어 접시에 놓여진 사과와 수박들을 놓고 그 날 화기애애했던 술자리가 어떻게 깨졌는지 나는 모른다. 그냥 과도를 들고 있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결혼 생활을 하고 앉아 있는 그가 멀찍이 있었다. 나는 취했고 사람들은 태연한 표정으로 과일 껍질을 얇게 깎는다며 자랑하는 것에 깔깔 웃었다. 나도 웃었다. 웃다가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가 있던 곳은 어디였더라. 낯선 방, 낯선 사람들. 불안한 눈빛들.
"내가 대체 뭘 어쨌냐니까!"
"그냥 과일을 이쁘게 잘 깎드라."
그래, 나는 그런 걸 잘 하지. 허허실실 웃다가 초췌한 내 몰골에 또 웃고 그리고 한참 뒤에 집으로 돌아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아무도 말하지 않았으니까 그게 진실이겠지.
그리고 이후로 첫사랑 그는 나를 피하고 사람들은 한동안 내가 술을 마시면 말렸다. 물론, 그들 앞에서 폭발은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내가 그 날 폭발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폭발하고 싶어서 그 자리에 나갔다.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나는 과일을 예쁘게 잘 깎는 여자다. 그냥 그렇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식의 폭발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무모한 짓은 그만이다. 남을 다치게 하거나 내가 울게 되는 것도 그만이다. 이런 회상도 그만이다.
"내가 대체 뭘 어쨌는데요?"
"내가 대체 뭘 어쨌던 거야?"
술자리였다. 동호회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첫사랑이었던 남자와 함께 동호회를 이끌던 초창기 멤버였다. 그는 결혼하고도 꽤 오래 동호회 활동을 했다. 우리는 종종 마주쳤다. 그 날도 우리는 만났다. 멀찍이 떨어져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그 날 개처럼 취한 상태에서 하필이면 폭발의 시기를 맞았다. 우리가 자주 가던 왼손에서 밤새 술을 마시며 사장님과 과일도 깎아 먹고 그랬던 것 같다. 덕분에 과도가 하필 그 자리에 있었던가 보다. 이쁘게 과일을 깎는 걸 자랑삼아 한참을 과도를 들고 있었던 나는 그걸 든 채로 술에 취해 있었다.
예쁘게 줄지어 접시에 놓여진 사과와 수박들을 놓고 그 날 화기애애했던 술자리가 어떻게 깨졌는지 나는 모른다. 그냥 과도를 들고 있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결혼 생활을 하고 앉아 있는 그가 멀찍이 있었다. 나는 취했고 사람들은 태연한 표정으로 과일 껍질을 얇게 깎는다며 자랑하는 것에 깔깔 웃었다. 나도 웃었다. 웃다가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가 있던 곳은 어디였더라. 낯선 방, 낯선 사람들. 불안한 눈빛들.
"내가 대체 뭘 어쨌냐니까!"
"그냥 과일을 이쁘게 잘 깎드라."
그래, 나는 그런 걸 잘 하지. 허허실실 웃다가 초췌한 내 몰골에 또 웃고 그리고 한참 뒤에 집으로 돌아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아무도 말하지 않았으니까 그게 진실이겠지.
그리고 이후로 첫사랑 그는 나를 피하고 사람들은 한동안 내가 술을 마시면 말렸다. 물론, 그들 앞에서 폭발은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내가 그 날 폭발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폭발하고 싶어서 그 자리에 나갔다.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나는 과일을 예쁘게 잘 깎는 여자다. 그냥 그렇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식의 폭발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무모한 짓은 그만이다. 남을 다치게 하거나 내가 울게 되는 것도 그만이다. 이런 회상도 그만이다.
"내가 대체 뭘 어쨌는데요?"
내년에는 내가 어떻게든 돈을 벌고 있을 것이고, 라인업도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음)이고 이번에 못 오게 됐다는 데미안 라이스도 오지 않을까 그냥 예상하고 어쨌든, 꼭 가겠어!!
목님과 잠시(? 라기엔 길었구나) 통화를 하다가 내 가슴이 벅차서 죽는 줄 알았다. 목소리가 피곤한데 뭔가 즐겁게 들려서 부럽기도 하고. 위궤양 때문에 날린 내 50만원 돈이 아까워 죽겠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가는건데!!!!!!!!!!
일단 가신 분들은 재미있게 놀다 오셔요. 제가 비록 옥헤이들의 뒷마당 댄스도 못 보고 선망하던 라르크 앤 씨엘 님들의 재롱도 못 봤지만은 현장 리포터님의 말을 들으니 간접적이지만 즐거웠사와요. 내년엔 저도 끼워주시고, 럭셔리하게 다녀오자구요.
그저, 부러울 따름.
목님과 잠시(? 라기엔 길었구나) 통화를 하다가 내 가슴이 벅차서 죽는 줄 알았다. 목소리가 피곤한데 뭔가 즐겁게 들려서 부럽기도 하고. 위궤양 때문에 날린 내 50만원 돈이 아까워 죽겠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가는건데!!!!!!!!!!
일단 가신 분들은 재미있게 놀다 오셔요. 제가 비록 옥헤이들의 뒷마당 댄스도 못 보고 선망하던 라르크 앤 씨엘 님들의 재롱도 못 봤지만은 현장 리포터님의 말을 들으니 간접적이지만 즐거웠사와요. 내년엔 저도 끼워주시고, 럭셔리하게 다녀오자구요.
그저, 부러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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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레쉬 100
자전거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렸으면 좋겠다.
반지 하나까지 충동구매해서 7만 5천원에 합의(?)봤다. 싸서 됴쿠나.
자전거 이름은 후레쉬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