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던 적이 있다. 여러번. 몇 년에 한번씩, 불규칙한 주기로 나를 찾아오는 폭발의 시기가 있다. 폭발 이후 기억은 거의 사라지므로 지인들의 기억에 의존해야 했다. 지인들은 말을 아꼈다. 나도 많이 묻지 않았다. 무서웠다. 그 무서움을 무릎쓰고 단 한 번, 물었던 적이 있다.

  "내가 대체 뭘 어쨌던 거야?"

  술자리였다. 동호회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첫사랑이었던 남자와 함께 동호회를 이끌던 초창기 멤버였다. 그는 결혼하고도 꽤 오래 동호회 활동을 했다. 우리는 종종 마주쳤다. 그 날도 우리는 만났다. 멀찍이 떨어져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그 날 개처럼 취한 상태에서 하필이면 폭발의 시기를 맞았다. 우리가 자주 가던 왼손에서 밤새 술을 마시며 사장님과 과일도 깎아 먹고 그랬던 것 같다. 덕분에 과도가 하필 그 자리에 있었던가 보다. 이쁘게 과일을 깎는 걸 자랑삼아 한참을 과도를 들고 있었던 나는 그걸 든 채로 술에 취해 있었다.

  예쁘게 줄지어 접시에 놓여진 사과와 수박들을 놓고 그 날 화기애애했던 술자리가 어떻게 깨졌는지 나는 모른다. 그냥 과도를 들고 있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결혼 생활을 하고 앉아 있는 그가 멀찍이 있었다. 나는 취했고 사람들은 태연한 표정으로 과일 껍질을 얇게 깎는다며 자랑하는 것에 깔깔 웃었다. 나도 웃었다. 웃다가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가 있던 곳은 어디였더라. 낯선 방, 낯선 사람들. 불안한 눈빛들.

  "내가 대체 뭘 어쨌냐니까!"

  "그냥 과일을 이쁘게 잘 깎드라."

  그래, 나는 그런 걸 잘 하지. 허허실실 웃다가 초췌한 내 몰골에 또 웃고 그리고 한참 뒤에 집으로 돌아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아무도 말하지 않았으니까 그게 진실이겠지.

  그리고 이후로 첫사랑 그는 나를 피하고 사람들은 한동안 내가 술을 마시면 말렸다. 물론, 그들 앞에서 폭발은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내가 그 날 폭발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폭발하고 싶어서 그 자리에 나갔다.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나는 과일을 예쁘게 잘 깎는 여자다. 그냥 그렇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식의 폭발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무모한 짓은 그만이다. 남을 다치게 하거나 내가 울게 되는 것도 그만이다. 이런 회상도 그만이다.




  "내가 대체 뭘 어쨌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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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s G.

다시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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