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
저 문구만 보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항상 보고 싶지만 보게 되는 것이 겁이 나는.
돌아가보고 싶다는 것은, 좀 두려운 일인 듯하다.
공포 없이 과거를 그리워하는 일이란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다.
코카콜라
나를 아프게 만든 무엇인가에 대한, 또 누군가에 대한 불평과 불만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골병난 몸을 이끌고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점점 줄어들어 결국에는 '1. 아, 됐고 이렇게 만든 게 누구야, 싸우자, 와 2. 그래도 어떻게든 죽을 때까지 버티고 산다, 아니면 3. 내가 죽어야 이 꼴을 더 이상 안 본다' 정도로 보기가 요약되는 듯하다.
1번을 지나 2번에 접어든 삶을 살고 있는 나로서는 3번까지는 안 가도록 스스로를 잘 다스릴 필요가 있는데... 그래서일까? 가끔은 타인의 슬픔을 모른척하고 내 아픔에만 몰두하고는 한다. 세상에는 불합리한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감아버릴 때도 많다. 그렇다. 병든 사회의 병든자로 산다는 것은 점점 더 '모른척'할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직은 내 '모른척'에 대해 양심의 가책 정도는 느끼고 있지만, 이 마저도 지나간다면 '세상은 원래 그런건데 어린 니들은 아무것도 몰라서 그래'라고 말하는 꼰대로 늙게 되겠지.
그런데 정말 2번과 3번 보기 사이에 다른 미지의 보기는 없는 걸까? 그걸 찾아내야 할 것 같다. 적어도 살아가는 동안 아주 짧은 순간 동안이었다고 해도, 스스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는 확신을 가진 채 죽을 수 있으려면.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떠나지 않는다.
몇 달 동안 나를 괴롭힌, 나뿐만 아니라 회사 사람 모두를 괴롭혔던 한 클라이언트와의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어 간다. 그 사이에 2년 넘게 (거의) 끊다시피했던 담배를 다시 들었다. 흡연을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건 아니었지만, 흡연의 시간은 나에게 한 5분 정도 사고를 정지하고 바깥공기를 쐴 수 있는 소소한 시간을 주었다.
다니고 있는 회사는 재개발지역에 있다. 낡디 낡은 건물들이 우르르 몰려 있는 이 삭막한 동네에서 2년 반을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동안 나는 모은 돈도 없고, 만나는 남자와는 잘 되질 않았고, 친구들도 멀리 있고, 지금 심신이 너무 아프다.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일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민하... 는 건 뻥이고 하루에 한 번은 생각하는 것 같은데...답이 없다.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머리를 리셋시키고 나면, 나는 내 자리에 돌아와 일을 한다. 그것도 일단 시작하면 열심히 한다. 나는 내 열심히 병 때문에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망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그래?', 라는 마음의 소리에는 그래도 사람이 책임감은 있어야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말이다. 속은 썪어들어가면서.
잘 살고 싶었는데,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잘 사는 건지 모르겠고, 자꾸 돈에 얽매이게 되고, 그러면서도 돈은 안 모으고, 그러니 매달 카드값 내느라 허덕허덕하고, 나한테 화가 난다.
으이구, 이 바보 몽충이 같은 거...
그래도 나니까 안 미워하려고 노력중이다. 이런 나도 위로는 필요함.
아버지는 자식을 언제까지나 통제 아래 두려 하고 자식은 그런 아버지와 판박이처럼 닮아간다. 두 개의 비등한 권력이 다투면 누가 살아남아도 산 것이 아니다. 어느 쪽이 이겨도 그것은 결코 이긴 것이 아니다. 맹수의 무리에서 자식새끼가 크면 제 살길과 제 가족을 찾아 새로운 여정을 떠나라 등 떠밀 듯, 우리는 오래전 지난 날 이미 그렇게 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너와 나는 다르다, 절대로 같을 수 없다, 죽을 때까지. 상대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언제까지 물고 뜯어야만 이 쓸데없는 권력 싸움이 종식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째서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일까. 조용하고 묵묵하게 살아내는 이들에 대한 피해가 너무나 크다.
상처는 당사자들만 받는 것이 아니다.
상처는 공동체 모두에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