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간 만에 혼자 다녀온 공연, 역시, 좋다, 이런 느낌. 잊고 지냈던 예전 사진을 우연히 책장 사이에서 찾아낸 것처럼 아련한 무언가가 있었다. 이제 친구나 애인 없이 공연장에서 혼자 방방 뛰고 소리지르는 일들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게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나는 했다. 중간에 옆사람이 일어나서 혼자 온 게 티가 나게 앉아 있긴 했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그냥 그 세 시간, 나는 제멋대로 성시경과 나만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공연을 즐겼으니까.
첫 데뷔 때 우와, 정말 크다, 라고 생각했었던 이 남자는 여전히 거대하고 정장이 잘 어울렸고, 역시 잘 생기지 않았고(?), 무기 같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곤드레만드레, 이런 노래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 남자가 부르니까 어쩐지 귀여웠다. 그렇게 큰 사람이 웨이브를 할 수 있다니 좀 놀라웠고(뻣뻣했지만서도), 퍼포먼스에 대한 환상을 나름대로 보여주었던 것도 재미있었다.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가진 역량을, 최대한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던가 하는 모습들이 예뻐서 내내 웃고 또 웃었다.
언젠가 성시경씨를 좋아하지 않겠어, 라는 이상한 다짐을 했었는데 완전히 물거품이 됐다. 일단 그간 라디오를 들으면서 이 목소리는 싫어할 수가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공연장을 다녀오니 엄청 설레서 그냥 포기. 그냥 좋아할란다.
게다가 난 놀랐다. 내가 이 사람 노래를 이렇게 많이 알고 있었나 싶게 거의 모든 노래를 따라하고 있었다! 물론, 가끔씩 1,2절을 헷갈리고, 내 맘대로 가사를 바꿔부르는 부분도 많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응?). 짝사랑하는 남자를 바라보듯이 세 시간을 제대로 지내고 돌아왔다. 어쩌면 그 동안 짝사랑했던 거 아닐까? ㅋㅋㅋㅋㅋ
어쨌든 행복한 음악 시간, 감사합니다. 어쩐지 당신 같은 술친구 있으면 참 좋겠다, 라고 생각하게 되는군요. 굉장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썩 괜찮은 청년이길 바라고 있어요. 히히.
이제 나도 힘내야겠다. 주말마다 외지로 나다니던 짓을 그만두고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야지. 좋은 공연의 여파가 이렇게 크다.